문재인 정부의 숙원사업인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달 방미 당시 핵 잠수함 개발에 필수적인 핵 연료 공급을 미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독자적 우라늄 농축 시설이 없는 우리나라는 핵 연료 자체 조달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이 같은 요구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6일 김 차장이 미국에 핵 연료 공급을 요청했는지에 대해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국익에 관련한 외교안보 사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을 당부 드린다”고만 했다. 김 차장이 지난 7월 방송 인터뷰에서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며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의욕을 보였던 만큼 실제 이를 요청했을 것이란 게 정부 안팎의 반응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핵추진 잠수함 개발’은 실제 우리 군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2, 3일에 한 번 꼴로 물 밖으로 나와 연료를 공급 받아야 하는 기존의 디젤 잠수함과 달리 핵 잠수함은 무제한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 핵 연료를 한 차례 주입하면 최소 10년 동안 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잠항 속도도 디젤 잠수함보다 3배 이상 빨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북한의 잠수함을 장시간 감시, 추적은 물론 유사시에도 신속히 빠져나올 수 있다.
군 당국은 3,000톤급 대형 잠수함을 독자 설계한 경험과 우리의 원전 기술을 바탕으로, 핵 잠수함을 건조할 기술력을 갖췄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지난 8월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며 핵 잠수함 도입을 사실상 공식화하기도 했다. 앞으로 건조될 3,600~4,000톤급 잠수함에는 기존의 디젤이 아닌 원자력 엔진이 탑재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내지 핵 연료 제공에 대한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우라늄을 20% 미만까지 농축할 수 있도록 했지만 군사적 목적의 핵 연료 사용은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 군 당국은 핵추진 잠수함은 엔진만 핵 연료로 가동하기 때문에 군사적 활용을 금지한 한미 원자력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 차장 역시 “핵추진 잠수함과 원자력 협정은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에 협정을 개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는 러시아나 유럽 등으로부터 핵연료를 제공 받으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가능하지만 한미 동맹을 고려해 미국으로부터 핵 연료를 제공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확고한 핵 비확산 입장과 한미 동맹의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란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핵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이 원자력 협정과 관련해 '한국이 핵 잠수함 개발이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쉽사리 유권해석을 할 리가 없는 상황에서 핵 연료 제공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미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시기를 감안하면 김 차장의 행보가 다소 뜬금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권 교체가 이뤄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핵 잠수함 개발’이란 중요한 이슈를 결정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한반도 안보 이슈 전체를 놓고 아예 새 판을 짜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김 차장이 트럼프 정부가 당장 들어줄 리도 없고 들어줄 수도 없는 사안을 꺼낸 것"이라며 "대북 관계에서 답보 상태를 거듭하다 보니,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김 차장의 방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화상 기조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 선언 공식화’를 제안하기 직전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을 바라며 종전 선언을 띄운 상황에서 김 차장이 북한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핵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엇박자 행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지난 7월 미국과의 협상으로 고체연료 추진체 개발 제한을 푸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주도했던 김 차장이 또 다른 업적을 내기 위해 찔러보기식 행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