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사태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점도 그 중 하나다.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직장을 잃거나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울증과 고독감에 시달리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감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자살률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파악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징후는 뚜렷한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8월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400명 가운데 10%가 “지난 한 달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답했다. 2018년 조사 때보다 두 배나 뛴 비율이다. 특히 18~24세에서 이 같이 응답한 비율은 4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나 청년세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예방 상담전화가 급증한 것도 암울한 신호다. 경제 불황과 고립 등 코로나19가 초래한 감염병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대중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CDC 자살예방 전문가 샐리 커틴은 매체에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 상담전화가 8배까지 폭증했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심리치료 애플리케이션(앱) 토크스페이스의 영상 상담 신청도 250% 폭증했는데, 불안 증세가 심각한 환자가 비약적으로 늘어 전체 신청자의 40%에 달했다.
물론 이런 지표가 실제 극단적 선택 증가로 이어질지는 단언하기 이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팬데믹 이후 발표된 일부 국가의 자살률 추정치만 봐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 느껴진다. 일본의 8월 자살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5.7% 늘어난 1,854명으로 집계됐다. 이전까지 꾸준히 감소하던 추세가 반전된 것이다. 태국 정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국민이 지난해 인구 10만명 당 6.6명에서 올해 9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살률을 높이는 최대 기저 요인은 실업이다. 통상 실업률과 자살률은 비례적 관계를 보인다. 최근 줄 잇는 폐업과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대량 해고가 취약계층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학전문지 랜싯은 실업률이 1% 증가할 때마다 유럽 내 자살률은 0.79%, 실업급여가 적고 총기 접근이 쉬운 미국은 0.99%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역사적으로도 감염병이 창궐하면 어김없이 극단적 선택도 늘었다. 1918년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확산 당시 유럽 내 자살은 33%가량 급증했다. 디에고 데 레오 슬로베니아 자살예방연구소장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유행 때 홍콩에서도 노인 자살률이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각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앞다퉈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민관이 힘을 합쳐 자살 예방 및 상담 서비스도 계속 늘리고,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자살자의 20%가 사용하는 농약에 대한 접근 역시 어려워졌다. 이코노미스트는 “극단적 선택의 가장 좋은 예방법은 가급적 빨리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노력으로 예고된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