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단번에 이성의 시선을 낚아챌 외모다. 재력까지 지녔다. 게다가 영원불변의 삶을 산다. 신과도 같은 존재인데, 순정한 사랑을 도모한다. 인간인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뱀파이어의 본능을 거부한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는 판타지의 끝을 보여준다.
패틴슨은 5편까지 나온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세계적인 청춘 스타가 됐다. ‘제2의 주드 로’라는 평판이 얹어지면서 앞길은 더 넓고 평평해졌다. 완전무결한 남자 에드워드 이미지에 무한정 기대며 상업영화에만 출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패틴슨의 행보는 세간의 예상과 달랐다. 블록버스터는 멀리하고 작가주의 감독과 어울렸다. 지난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비디오드롬’(1983)과 ‘엑시스텐즈’(1999) 등 기괴한 영화를 주로 만든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의 조합부터 심상치 않았다. ‘코스모폴리스’(2012)와 ‘맵 투 더 스타’(2014)에 잇달아 출연하며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갔다. ‘코스모폴리스’ 속 패틴슨의 모습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뉴욕 월가 최연소 거물 투자자 에릭을 연기했다. 갖은 물질적 안락을 누리면서도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패틴슨은 에드워드의 이면과도 같은 에릭으로 변해 청춘 스타 이미지를 탈색했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라이트하우스’(2019)와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2020)는 패틴슨의 지향점을 뚜렷이 보여준다. 두 영화는 패틴슨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에드워드의 그림자를 지운다. ‘라이트하우스’는 외딴 섬의 고참 등대지기 토머스(윌럼 더포)와 신참 에프라임(로버트 패틴슨)의 갈등을 그린다. 권위적인 토머스는 기성세대를, 반항적인 에프라임은 신세대를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차용한 영화는 두 배우가 빚어낸 광기를 에너지로 삼는다. 패틴슨의 연기는 31년 선배 더포의 위세에 밀리지 않는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패틴슨은 하나님의 존엄을 앞세워 욕정을 채우는 목사 프레스턴으로 변모한다. 갖은 불행을 겪으며 성장한 주인공 아빈(톰 홀랜드)이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악을 상징한다. 조연이지만 야비하고 교활하며 냉소적인 프레스턴의 중량감은 주연 못지 않다.
패틴슨은 ‘더 배트맨’을 촬영 중이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한 블록버스터다. 패틴슨답지 않은 행보지만, 그가 맡은 역할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배트맨은 부유한 슈퍼히어로지만 부모를 눈앞에서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감독은 맷 리브스. ‘렛 미 인’(2010)과 ‘혹성탈출’ 시리즈로 작가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라이트하우스’와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본 이들이라며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