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내 작품 어렵다고요? 다 아는 얘기예요"

입력
2020.10.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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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에서 첫 개인전  ‘양혜규-O₂&H₂O’ 열어



독일을 중심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양혜규(49)는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명이다. 베니스비엔날레(2009년), 카셀 도쿠멘타(2012년) 같은 세계적 미술제에 소개됐고 이후 런던 테이트모던,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지금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이고, 곧 캐나다, 영국, 필리핀 등에서 동시에 전시를 연다.

그런 양혜규가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양혜규-O₂&H₂O’란 제목이다. 앞서 아트선재센터, 리움미술관, 국제갤러리에 이어 네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5일 양혜규는 빨래 건조대 얘기부터 꺼냈다. 그의 장기는 전통, 문명, 세계화 같은 거대한 이슈를 다루면서 그것을 개인의 기억이 담긴 일상의 사물로 표현해 내는 데 있다. 빨래 건조대도 그중 하나다.

“과거 서울 도심의 한 한옥에서 살 때 골목에 빨래 건조대가 많이 나와 있었어요. 빨래 건조대라는 게 필요할 때는 펼쳐서 쓰고, 안 쓸 때는 또 접어서 감추어 두는 거잖아요. 우리의 어떤 삶의 표시 같은 거죠. 매우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남에게 드러내 보여 주기 부끄러울 때도 있지 않나요. 접었다 펼쳐지는 빨래 건조대를 통해 그런 얘기들을 해 보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에서 빨래 건조대는 방울 옷을 입고 있다. 접히진 않지만, 건드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낸다.



현상의 이면을 탐구한 작품도 함께 내놨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보도한 생방송에서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누기 직전 30분간의 소리를 담고 거기에 작가의 인공지능 기술로 복제된 목소리를 삽입한 ‘진정성 있는 복제’는 무형의 소리를 통해 본질을 묻는 작품이다. “그 장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치열한 이벤트 뒤에는 자연이 있다는 거였어요. 회담이 진행될 때는 비무장지대가 물리적 장소로서 가지는 상징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누기 직전 들리는 새소리는 물리적 장소의 상징을 보여 주죠.”

코로나19 또한 신자유주의의 이면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질주하는 바퀴가 코로나19로 갑자기 멈췄어요. 저는 그 바퀴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편이었어요. 삶의 방식이나 일에 있어서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인간이 아닌 비인간적인 것에 의해 멈춰진 거죠. 그간 인간단위로 봐 왔던 관점과 인식이 배치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양혜규의 작품은 유명하지만 대중적이지 않다. “아마 작품의 모호성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모호하다는 것과 어렵다는 건 다르죠. 한마디로 정의가 안 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품이 추상적이어서 그런 것이지 복잡한 학설처럼 내용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닐 겁니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다 아는 얘기를 그 동안 이런 형식으로 얘기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에요.”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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