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보낸 건강기능식품... 혹시 그냥 '식품' 아닌가요?

입력
2020.09.30 14:00



“올해는 고향 방문 대신, ‘선물세트’로 마음을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어르신들 몸 건강에 좋은 ‘건강기능식품’이 어떨까 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고향 방문'을 자제하면서 선물용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고 가족들끼리도 마음 편히 대면하지 못하다 보니, 한우ᆞ과일 등 ‘나눠 먹는 음식’보다는 영양제나 홍삼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수요가 폭발하자 과장ㆍ허위광고의 수준도 도를 넘었다. 현재 시중 대형 마트나 백화점 등의 건강기능식품 코너에서 판매 중인 제품 중 상당수가 효능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일반 식품’이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시내 대형 마트와 백화점 식품 코너 20여 곳을 돌아본 결과, △건강기능식품과 일반 식품이 같은 코너에 나란히 놓여 판매 중이거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닌데도 효능이 과대 표현된 경우 △판매원의 안내가 일반 식품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하게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대에 설치된 각종 홍보 문구만으로는 건강기능식품과 일반 식품을 혼동할 여지가 많아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동물실험과 인체 적용시험 등의 평가를 거쳐 건강에 미치는 효능과 기능, 부작용 등이 철저하게 검증된 제품에만 ‘건강기능식품’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위생인증인 ‘HACCP(해썹)’ 마크와는 별개로 훨씬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국내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된 품목으로는 홍삼, 비타민 및 무기질, 프로바이오틱스, 밀크씨슬이 대표적이다. 물론 함유 비율, 제조 기준에 따라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기타가공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함유량이 높은 ‘홍삼농축액’은 건강기능 식품이어도 함유량이 적은 ‘홍삼 캔디’는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캔디류’다.


‘일반 식품’이지만 마치 ‘건강기능식품’인 것처럼 여겨지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크릴오일이다. 크릴오일은 흰수염고래의 주식이자 남극해에 주로 서식하는 플랑크톤 ‘크릴’에서 추출되는 기름으로, 항산화 작용을 돕고 지방을 녹여준다는 효능이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생활 정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알려진 크릴오일의 효능 중 대부분은 검증되지 않은 ‘과장 정보’다. 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크릴오일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국내 크릴 오일 제품 중엔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은 제품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제품은 ‘비만, 고혈압, 뇌졸중 등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허위광고를 내걸고 있다. 대형 백화점 매대에서는 ‘혈액 건강’ 기능 상품으로 포장되어 있거나, 밀크씨슬이나 오메가3 등 건강기능식품들과 한 데에 묶여서 판매되고 있다.

크릴오일 뿐만이 아니다. 로열젤리나 마누카꿀과 같은 ‘벌꿀’류는 물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는 열대식물 노니, 면역기능을 강화해준다는 과일 타트체리도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다. ‘건강식품’이라는 애매한 위장 표현을 내걸고, 제품 자체가 아닌 제품에 ‘일부 포함’된 성분의 효능을 부풀리기까지 했다. 제품 성분 상세란에서 ‘식품 유형’을 살펴보면 식약처의 공식 마크를 받은 상품은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분명히 기재돼 있지만, 크릴오일은 ‘어유’ᆞ타트체리는 ‘과채주스’ᆞ마누카꿀의 경우는 ‘벌꿀’ 등으로 표기돼 있다.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흑삼순액, 산삼배양근, 천향 침향단 등의 제품도 이 성분표를 상세하게 따져 보면 일반 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건강기능식품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엄격하게 검증됐는지’에 따라 등급이 갈리기도 한다. 제품 상세 설명을 확인하면 1등급은 ‘○○에 도움을 줌’으로, 2등급은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표시된다. 1등급은 과학적 연구 결과가 충분해 효능이 명확히 입증됐을 때, 2등급은 각종 테스트에서 효과를 냈지만 1등급만큼 충분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없을 때 부여된다. 홍삼, 유산균, 백수오 등 국내 건강기능식품의 95% 이상이 2등급에 해당한다. 뚜렷한 효과를 기대한다면, 제품 뒷면에 적힌 설명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구매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면역기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틈을 타 최근에는 효능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영양제와 건강주스 등이 ‘코로나19를 막아준다’며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식약처는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 23일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공식 인증마크를 확인하고, 코로나19에 특효가 있다는 광고나 입소문을 믿고 구입하는 것을 삼가라”고 권고했다. 또한 최근 허위ㆍ과장 광고로 적발한 업체들에 대해서는 ‘행정처분과 고발 조치를 병행해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면서 이상 사례가 발생한 경우엔 1577-2488 또는 ‘내손안(安) 식품안전정보’앱을 통해 신고하면 된다.

박지윤 기자
서현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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