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박래현이 왔다 ... 다시 문 연 국립현대미술관

입력
2020.09.29 15:24



코로나19로 휴관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석을 이틀 앞둔 29일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관에 맞춰 현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두 여성 작가의 전시가 나란히 개막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를 내세웠다. 'O₂& H₂O'라 이름 붙은 전시로 그의 대표작부터 신작까지 40여점을 선보인다. 양혜규는 올해 ‘MMCA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선정됐다. 그의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네치아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세계적 무대에서 활동해온 작가의 다양한 작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손잡이, 블라인드, 방울 등을 활용해 복합적인 조각과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현실의 추상성’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산소와 물을 언어 대신 화학기호로 표현한 전시 제목은 과학과 지식이 구성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오롯이 인지할 수 없는 우리의 경험과 감각을 뜻한다.



이번 전시엔 양혜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2017)를 만날 수 있다. 154개에 달하는 블라인드로 제작된 원통형의 구조물로 빛과 시야는 가리지만 냄새와 소리는 넘나들도록 해뒀다. 일상적 사물인 다리미,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냄비를 뒤집거나, 맞붙여 방울로 뒤덮은 ‘소리 나는 가물’ 시리즈와 오방색(검정, 파랑, 빨강, 노랑, 흰색)이 상징하는 다섯 가지 원소(물, 나무, 불, 흙, 철)에 오늘날 사회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을 차용한 ‘오행비행’ 등의 신작도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는 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미술가 박래현(1920~1976)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이 열린다. '한국화 거장 운보 김기창(1913~2001)의 아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박래현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에는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138점과 아카이브 71점이 나온다.

박래현은 식민지 시기 일본화를 배웠으나 해방 후에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회화를 모색했다. 1943년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새로운 동양화풍을 시도했다. ‘이른 아침’, ‘노점’으로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연이어 받았다.

1960년대에는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의 추상을 이끌었고, 1970년대에 선보인 판화 작업들은 20세기 한국 미술에서 선구적인 작업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1976년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그의 작업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었던 박래현의 작품을, 작가가 생전 자신을 표현했던 ‘삼중통역자’라는 단어를 빌려 소개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소장가들의 적극적 협력으로 평소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장에 나왔다”며 “열악했던 여성 미술계의 선구자였던 박래현 예술의 실체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문은 다시 열었지만, 관람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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