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정오에 찾은 서울 강남구 BHC치킨 삼성점은 한산했다. 영업을 갓 시작한 시각이라 1층 테이블 20여개는 텅 비어 있었다. 주문을 담당한 직원 한 명과 2층 주방에서 닭을 튀기는 직원까지 두 명만이 매장을 지켰다. 기자가 치킨을 먹는 30여분간 해당 매장에는 배달주문 4, 5건이 들어온 게 전부였다. 점심시간치고는 조용한 풍경이었다.
이날의 한산함과 달리 이 매장은 3년 전인 2017년 11월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당시엔 BHC치킨이 아닌, ‘BBQ치킨 봉은사역점’ 간판을 내걸고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3년전 언론에서 이 매장을 주목한 이유는 ‘회장 갑질’ 논란 때문이었다. 매장을 찾은 윤홍근 BBQ 회장이 매장 2층 주방 앞에서 직원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고, 가맹점주인 김모(45)씨가 윤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폐점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터진 ‘미스터피자 회장 갑질’ ‘호식이두마리치킨 갑질’ 등 각종 갑질 사건과 함께 거론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 회장과 BBQ가 사실과 다르다고 아무리 말해도 '갑질 회장'으로 이미 낙인이 찍힌 상황이라 쉽게 믿어 주지 않았다. 회사의 이미지 추락은 곧바로 매출 타격으로 이어졌다. 삼덕회계법인이 작성한 재무실사보고서에 따르면 BBQ 매출액은 2017년까지 평균 10.98% 증가하다가 갑질 논란 발생 직후인 2018년에는 전년 대비 2.24%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일보 취재결과 윤홍근 회장은 당시 갑질 가해자가 아니라, 갑질 논란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윤 회장이 갑질을 했다며 제보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재판에 넘겨져 형사처벌 위기에 처해 있으며, 거액의 배상금까지 물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 2017년 이 매장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명을 썼던 중견기업 회장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윤홍근 회장 갑질 논란’의 시작은 2017년 5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련 내용이 보도되기 약 6개월 전이다. 이날 윤 회장은 개점한 지 두 달 정도 된 매장을 격려하기 위해 임직원과 함께 해당 매장을 방문했다. 일상적인 방문이었지만, 그날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윤 회장이 주방에 들어가려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가맹점주 김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 회장이 막무가내로 주방에 진입하려 했고, 주방직원이 기름이 튈 위험이 있다며 이를 저지하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BBQ 회장이야!’ ‘이 XX 해고해’ ‘이 매장 폐점시켜’라며 고성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손님의 증언도 나왔다. 목격자 이모(41)씨는 “소리를 지르고... 나이 드신 양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소리가 나왔다”며 “딱 TV에서 보던 갑질이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김씨는 BBQ의 갑질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윤 회장이 다녀간 뒤로 유독 기준 중량보다 가벼운 닭을 공급받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줄곧 950~1,050g 닭을 받아 왔지만, 회장 방문 이후 닭 무게가 720~850g으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언론제보 이후에도 김씨의 고발은 이어졌다. 그는 보도 당일인 2017년 11월 14일 윤 회장과 당시 현장에 있던 임원진, BBQ 본사 등을 영업방해, 공정거래법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당시 여론이 워낙 안 좋아 윤 회장과 BBQ가 빠져나올 길은 없어 보였다.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BBQ 측도 김씨와 목격자 등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김씨와 목격자 이씨, 주방직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BBQ 측이 진짜 억울해서라기보다는 갑질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한 형식적 대응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당시 매장 2층에서 윤 회장의 폭언을 목격했다던 이씨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씨는 점주의 지인으로, 당시 현장에는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씨는 조사과정에서 매장에 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한 것이고, 허위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이 폭언을 했다는 김씨의 주장도, 주장만 있을 뿐 증거는 없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결국 2018년 9월 윤 회장의 갑질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회장 방문 이후 유독 기준 중량보다 가벼운 닭을 공급받았다는 김씨의 주장도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닭은 채반작업(핏줄ㆍ내장 등 제거)을 거치면 100~150g이 줄어들고, 공급한 닭이 기준 중량을 미달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반전은 윤 회장의 무혐의 처분으로 그치지 않았다. 제보자 김씨와 목격자 이씨가 형사처벌을 받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이들을 허위제보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두 사람이 공모해 윤 회장 및 BBQ 본사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언론사에 알려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판단했다.
거액의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김씨와 이씨는 BBQ 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1심 법원은 이씨에게 8억원을 물어 주라고 판결했다. 한국일보는 이와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이씨 변호인단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까지 경찰과 검찰, 법원의 판단을 종합해보면 김씨와 이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왜 이 같은 허위제보를 한 걸까.
한국일보 취재 결과 김씨는 허위제보 이전부터 BBQ본사 측에 앙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론과 수사기관에 줄기차게 본사가 가맹계약 전부터 자신을 속여왔다고 주장했다. 그가 본사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에는 ‘갑질 논란’외에도 원가율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 쟁점으로 적혀있다. 원가율이란 판매가 대비 원ㆍ부자재 가격의 비율로, 이 수치가 낮을수록 가맹점이 가져가는 수익이 커진다. 김씨는 BBQ 관계자가 제시한 원가율(38~40%)이 낮은 것 같아서 가맹계약을 체결했는데, 실제 사업 시작 후 계산한 원가율은 70%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물류비에 광고분담금이라는 항목이 포함됐는데, 김씨는 이를 사전에 고지 받은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BBQ본사는 “원가율은 주류를 많이 판매했을 때 38%정도라는 것을 알린 것이고, 광고분담금의 경우 분담비율은 계약서상에 명시했고 액수는 가맹점주들의 대표기구인 마케팅위원회에서 결의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계약 위반에 따른 처벌을 면피하기 위해 언론에 악성제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BBQ 본사가 김씨를 상대로 제기한 고소장에 따르면 봉은사역점은 2017년 8월 진행된 품질점검에서 계약상 사용할 수 없는 외부 닭과 기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대해 본사는 김씨에게 "시정하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김씨가 그 동안 문제삼지 않았던 윤 회장 방문 관련 사안을 본사 직원에게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에 대해 “봉은사역점은 내가 원래 운영하던 레스토랑 메뉴에 BBQ치킨 메뉴를 더해 영업하기로 했다”며 “매장에 있던 사입제품(프랜차이즈 공급품이 아닌 외부제품)은 기존 레스토랑 메뉴에 쓰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김씨가 허위제보와 고소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본사와 싸움을 이어나간 것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심지어 김씨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손해를 봐가면서 폐점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처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행보 때문에 업계에서는 김씨의 제보가 결국 단기간에 큰 이득을 취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김씨는 본사 직원에게 금전적 요구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씨가 BBQ 본사측 부사장 및 직원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살펴보면, 김씨는 본사에 △물품대금 30% 할인 △봉은사역점 직접인수 △권리금 3억5,000만원 지급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물품대금 할인은 원가율을 정확한 수치로 제안을 해달라는 의미로 한 말이고, 3억5,000만원은 본사 직원이 먼저 제안한 가격”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금전적 요구를 한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갑질 논란’이 보도된 후 두 달여만인 2018년 1월 김씨의 매장은 BBQ치킨에서 BHC치킨으로 넘어갔다. 가맹점주와 본사 간의 갈등이 결과적으로는 경쟁업체에 득이 된 셈이다. BBQ본사는 이처럼 ‘언론보도→고소→매장인수인계’가 속전속결로 이뤄진 점을 들어 BHC치킨이 김씨를 막후에서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BBQ가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2017년 8월 BBQ 본사 직원과 나눈 대화에서 BHC 법무팀이 소송지원을 해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BHC치킨과 계약을 맺으면서 김씨는 상당한 금전적 이득을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와 BHC치킨이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업계에선 김씨가 BHC로부터 권리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2016년 10월 BBQ치킨 출점비용으로 1,800만원을 투자했던 것을 감안하면, 1년여 만에 적지 않은 차익을 챙긴 셈이다. 김씨는 이에 대해 “BHC 법무팀이 지원을 해준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도, 말한 기억도 없다”며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앞뒤 맥락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HC 측도 이와 관련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3년간 이어져온 '갑질 누명 피해'에 대해 BBQ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한 치킨프랜차이즈 인식 조사 결과, '갑질 사건' 이후 BBQ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는 응답이 65.8%로 나타났는데, 이는 가맹점들의 피해도 상당했다는 의미"라며 "또 현재도 유튜브 등에는 갑질 보도영상이 올라와있는 경우가 있어서 한 번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끌어올리기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