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4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권 내에서 '뜨거운 감자'같은 존재다.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 이건희 삼성회장 차명계좌 의혹 제기, 삼바 의혹 추궁 등 누구보다 개혁적 의정활동을 벌여왔지만, 조국사태나 추미애논란 등 주요 현안 때마다 당의 기류와 다른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아 열성지지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한국일보 특별기획 '공정을 말하다' 여섯번째 인터뷰로 박용진 의원을 만나 공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여당 내 어떤 의원보다도 공정에 대한 의견을 많이 개진했다.
”공정의 문제는 지금 갑자기 시대의 화두가 된 건 아니다. 사회 정의에 대한 문제는 인간이 사회공동체를 형성한 이후부터 가장 핵심적인 과제였다. 내가 쓴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에서 첫 번째 나오는 말이 바로 '불공정필망국'이다. 공정하지 않은 나라는 망하고, 그래서 나라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이다. 공정의 정의는 사회발달 정도나 역사적 경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지지 못한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고통 받고 힘들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요구와 갈등을 풀어주는 게 우리 사회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고 힘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공정의 가치를 지켜주려면 현재의 룰에서 이득 보는 사람들이 손해를 봐야 한다."
-현재의 룰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결국 기득권층일텐데 86세대도 포함하나.
“당연하다. 가장 많이 내려놔야 한다.”
-청년들과 기성세대간 간극이 너무 큰 것 같다.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갈등은 항상 존재해왔다. 1950년 한국전쟁, 19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혁명 때도 그랬다. 그러나 그 불만은 우리사회를 진일보시키는 에너지였고, 갈등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저쪽은 더해’ ‘이 정도는 우린 괜찮다’는 진영 논리나 ‘나 때는 다 그랬어’ 내로남불식 과거 잣대로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도 학창시절 데모할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너희가 뭘 안하고 떠드냐'였다. 4·19세대가 우리에게 '니가 이승만 때를 알아?'라고 했던 것과 우리 또래가 지금 청년에게 '라떼는 말야' 하는 것이나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점은 똑같다.”
-공정에 대한 관점도 세대 간에 차이가 많이 난다. 다시 86세대 얘기를 해보자면 86세대의 공정과 요즘 세대가 요구하는 공정도 다르지 않을까.
“시대가 변하면 불공정의 양태가 다르니까 공정에 대한 판단도 다른 것이다. 옛날에는 불공정이 큰 부정부패와 관련됐다면 지금은 낮은 수위에서의 가벼운 반칙들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던 반칙과 특권은 정말 큰 것이었다. 예전엔 힘있는 사람의 아들은 군대를 안 갔고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철근구조물 같은 반칙은 대부분 허물어졌다. 대신 소프트한 반칙·, 특권, 특혜가 생겨난다. 그렇다고 옛날의 공정이 더 중요하고 지금 공정은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조금의 특혜로도 결과를 가를 정도로 사회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에 공정에 좀 더 민감해진 것이다."
-공정을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허들을 만드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사회적 허들이 많아져야 돈도 힘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 평등한 출발과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허들의 기준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다.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적응 속도를 보일 거라 본다. 김영란법을 보자. 대상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고 하고 누가 다 감시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쨌든 법이 만들어져 사회에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 아닌가. '유치원3법' 통과로 사립유치원에 가이드라인이 생겨 결국 정착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 아픈 일인 것 같다.
“그렇다. 이른바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 희망이라는 철근과 노력이라는 시멘트가 잘 어우러지면 튼튼한 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본인 노력으로 희망이 현실화 될 수 있던 사회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지금은 희망을 꺾는 사회가 됐는데 가장 큰 문제는 교육 분야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지금 우리 교육현장은 아이가 뭘 해보려면 너무 일찍부터 부모가 에너지를 갈아넣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구체적 현안으로 들어가보자.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직군 자체를 정규직화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전환 과정은 좀 더 공개적 방식으로 채용했어야 한다고 본다. 기존 종사한 분들께는 가산점을 주되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열어놓는 게 맞다. 노동시장 전체로 볼 때 50%가 넘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돌리는 건 해법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되더라도 얼마든지 본인이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구조적 준비가 필요하다. 적어도 실질임금이 교육·주택·의료 비용을 받쳐주는 사회보장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임금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사회가 되면 왜 모두 정규직이 되고 공무원이 되려고 하겠는가."
-조국 추미애 장관 문제는 어떤까. 이 사안에 대해 여권 기류에 비해 상당히 비판적 의견을 냈고 그로 인해 이런저런 시달림도 받은 걸로 아는데.
"당연히 정치공세적인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국민이 공정하지 않다는데도 특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관점으로 보는 것은 답이 아니다. 어쨌든 이런 논쟁을 통해 가진 자에게 허들을 높이는 과정이 결국은 가지지 못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을 치유해내고 사회구성체를 강하게 결속하는 기능을 한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논쟁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보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군대 휴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할지, 장병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현실에 맞춰 카톡이든 페이스북 메시지든 신청 방법을 다양하게 할 지, 이런 방법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에서도 공정성이 쟁점이 됐다.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100% 맞다고 본다. 여기에 저항하는 의사들의 논리는 소득을 지키려면 의사 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기득권의 논리다. 의사와 협의하지 않으면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 또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사회적인 폭력이다. 다만 의대생 국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그들 가운데 직업이 갖는 사회적 기능을 일찍이 깨달은 이들도 많다. 막는 게 또다른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럴 때 정치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줘야 할 것이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