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지인이 큼지막한 종이가방을 하나 건넸다. 추석 '쭝투'를 축하하는 선물이라는 인사와 함께 상자 안에는 중국식 월병이 포장돼 있었다. 하긴 현지인들이 신년마다 소원을 비는 하노이 응옥썬 사당 안에 관운장이 이질감 없이 센터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잔상은 월병이 아니라도 베트남 어디에나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밀접한 양국의 관계가 최근 들어 유독 서먹하다. 표면적으로는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심화되면서 베트남 내 반중 정서가 강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지 외교가에선 "항상 베트남을 손 아래로 대하던 중국에 대한 반감이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기업인들 사이에선 "중국과의 무역 구조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온다.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각국의 투자 다변화 정책에서 베트남의 변화를 추론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중국이 큰 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EU까지 베트남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돈을 대겠다는 나라가 줄을 선 이상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의 베트남이었다면 잠시 싸워도 화해의 메시지를 이내 보냈을 것이다. 중국 역시 못 이긴 척 손을 잡았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엔 분위기가 묘하다. 을(乙)이었던 베트남은 공식석상에선 우호를 말하면서도 중국 외교라인의 입국을 비공식적으로 불허하는 등 거리두기를 더 강화하는 모습이다. 반면 중국이 오히려 '백신 선(先)제공' 등을 외치며 계속 화해를 요청하고 있다.
미묘한 시점에 한국은 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한국은 베트남에서 중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이 주름잡던 인프라 사업 등 빈 곳을 파고들고, 외교는 원칙론을 견지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용주의가 국민성의 근간인 베트남에선 우리 역시 실용적 접근법을 장착하는 게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