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기획 '공정을 말하다'의 마지막 순서는 공정논란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김범수(50)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인터뷰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정의와 공정을 집중 연구하는 규범적 정치이론이 그의 전공이다. 86세대이기도 한 그는 언론 등을 통해 현실적 공정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고 있다.
-그동안 '공정을 말하다' 연속인터뷰를 통해 원로학자부터 보수정치인, 진보정치인, 청년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 전문가들로부터 공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 분야 전공학자로서 공정이 뭔지 해답을 알려달라.
“딱 잘라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공정, 올바름, 정의 같은 규범적 성격의 개념은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불가피하다. 플라톤의 ‘국가론’ 1권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인데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공정은 현대정치철학에서 가장 논쟁적 이슈다."
-그래도 공정을 정의한다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 때 세상에 완벽하게 공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저마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르고 타고난 능력과 성향, 외모 등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삶의 모든 순간이 불공정의 연속이다. 때문에 하나의 정답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이런 것이다’라고 합의한다면 그게 바로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입시에서 농어촌 출신과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기회균형전형은 역차별이나 불공정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존속하는 건 지역 균형 발전과 사회적 약자 배려를 위해 '용인될 수 있는 불공정'이라는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나 국가유공자 가산점 제도도 비슷하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논란은 공정 관점에서 어떻게 봐야 할까.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는게 불공정일까, 이들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게 불공정일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제도 개선과 차별 철폐 측면에선 사회 전체의 공정에 기여한다. 반면 기회 균등과 채용 과정 측면에선 다른 취준생을 배제한 채 기존 보안검색 요원에게만 정규직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불공정하다고도 볼 수 있다. 양면성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의 공정성 증진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각에선 취준생들의 자리를 뺏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없었다면 애초 그 자리는 정규직 일자리가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적절한 비판이 되기 어렵다."
-조국 장관 딸 논란이나 추미애 장관 아들 논란은.
“두 사안의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모두 공정성과 관련이 있다. 조국 전 장관 딸의 경우 만약 재판에서 의전원 입시에 불법을 동원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당연히 타인의 기회를 빼앗은 불공정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불법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게 용인 가능한 수준의 불공정인지, 입시결과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변수였는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 연장 사안은 만약 추 장관 아들에게만 제공된 특혜라면 불공정이지만 다른 사병에게도 제공되는 기회인데 절차상 약간의 미비점이 있던 것이라면 불공정으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핵심은 ‘사회적으로 어느 수준의 불공정이 용인될 수 있는가’이다. 결과적으로 조국 사태가 사회의 공정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의사 파업 때도 공정문제가 제기됐다. 의사들은 공공의대로 의사가 되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듯한데.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게 공정 이슈인지 아닌지 잘 생각해보자. 의사들이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수가 조정과 인센티브 제공으로 지역과 공공의료의 인력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단지 의사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공공의사로 배출되는 데 대한 반대심리도 깔려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제도개선 노력이 먼저라는 주장, 그리고 전문교육을 충분히 받은 실력있는 사람이 의사가 돼야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다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왜 그런 의사의 숫자가 1년에 3,000명으로 제한돼야 하는가다. 3,000명은 옳고 3,400명은 틀린가. 어쨌든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는 공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필요와 부작용을 고려해 판단할 정책의 문제다.”
-국민들은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에게 재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여타 국시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의사수급필요에 의해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이지 공정 이슈는 아니다. 추가시험 기회를 줘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감정적으론 이해할 수 있지만 타 국시와 형평성 차원에서 정할 건 아니라고 본다. 의사 국시를 추가로 실시한다고 변호사, 공무원, 교사 등 다른 전문직 일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차피 응시자격을 갖춘 사람이 제한된 상황에서 추가 시험기회를 줄 지 여부는 여타 국시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왜 이렇게 우리 사회 모든 현안이 나올 때마다 공정성이 이슈가 되는 걸까.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예전엔 용인된 사안도 불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또 좋은 일자리나 승진, 부동산 취득과 자산 증식의 기회는 줄어든 반면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기회배분을 둘러싼 경쟁에서 공정성에 민감해진 것이다."
-정치권도 공정성을 고민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공방의 소재로 끌어내린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하면서 공정성을 국정철학으로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낼 대상이 아니라 정권의 문제, 정치공방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기회와 자원의 배분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상대 진영을 비난하는 데만 열중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라 어떤 사안은 결과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다른 사안은 기회 균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상대 약점 공격에만 집중하니까 모든 문제가 공정성 문제로 치환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에 가장 민감한 세대는 청년층이다. 이들은 공정과 관련해 주로 86세대를 많이 비판하고 있다. 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의 공정관을 어떻게 보나
“공정의 의미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우리 세대가 고민한 공정성은 거시적 차원의 문제였다. 정권 차원의 부정부패, 정경유착, 빈부격차,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 같은 구조적인 부패와 차별, 억압을 공정성의 틀에서 접근했다. 반면 일상 속의 불공정에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했다. 친구끼리 대리출석, 리포트 베끼기 등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대학생활의 낭만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반면 요즘 청년 세대는 거시적 차원의 불공정은 거의 경험한 적 없지만 입시, 취직 등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면서 일상 생활에서의 공정성에 더욱 민감해진 듯하다. 사회 변화에 따라 공정성의 초점이 달라진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공정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전제 위에 최대한 합의할 수 있는 공정의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합의가 가능할까.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되려면 공감할 수 있는 공정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사회적 토론이 절실하다. 세대, 계층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그래도 도덕적 원칙에서 어떤 교집합은 존재할 것이다. 이 교집합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공정성에 대한 합의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다만 공정성 문제가 과도하게 정치화되면 사회에서 합리적인 토론의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