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은 희망봉이 아니었다. 영어로 하면 Cape of Good Hope, 그러니까 희망곶이 맞는 번역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를 알면 알수록 희망봉이라는 지명 자체가 난센스로 다가왔다. 유럽엔 희망봉, 아프리카엔 절망봉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희망봉은 바닷가에 있었다. 자갈돌이 깔린 바닷가에 ‘Cape of Good Hope’란 팻말이 없었더라면 여느 해변과 다르지 않았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11월 중순의 이곳 연안에는 미역이 끊임없이 밀물에 밀려들고 있었다.
관광버스와 차량 수십대에서 내린 인파들은 희망봉 팻말 앞에 서서 인증샷을 찍느라 분주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빨리 자리를 잡아야 했다. 남는 건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건지지 못하는 것은 그 시각 그 곳의 느낌이다. 사진으로는 잘 복기되지 않는다. 눈 감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한참 느꼈다.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나미비아에서 남아공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맘속으로 그린 후 아프리카 최남단이라고 느껴졌을 때 눈을 떴다.
등대는 바닷가 절벽에 있었다. 차량을 타고 케이프포인트 등대에 오르니 인도양과 대서양이 한 눈에 들어왔다. ‘NEW YORK 12541 KM’, ‘LONDON 9623 KM’, ‘AMSTERDAM 9635 KM’, ‘RIO DE JANEIRO 6055 KM’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계적 명물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이 가나의 황금해안을 무역과 탐험의 기지로 삼은 것이 1471년이다. 서해안 남진은 계속됐다. 1488년 바르돌로뮤 디아스가 폭풍을 만나 ‘폭풍의 곶’이라고 이름붙인 곳이 바로 희망봉이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 개척의 기점인 이곳을 ‘희망의 곶’이라고 불렀다.
아프리카 해안의 남동풍도 이곳으로 접어들면 잦아든다. 대서양 바닷바람도 이곳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극동항로를 개척하는 포르투갈에게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이곳이 교역의 교두보로만 활용됐으면 지구촌에도 희망이 됐겠지만 식민지 개척의 전초기지가 되면서 그들만의 희망이 됐다.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은 아니었다. 남동쪽 160㎞, 남위 34도52분, 동경 19도50분 지점인 아굴라스곶이 최남단이다. 바늘이라는 뜻이다. 아굴라스 입장에서는 디아스와 가마 두 인간의 편견으로 500년 넘게 희망봉의 지위를 빼앗기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희망봉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가 있었다. 희망봉 북쪽 50㎞ 지점에 있는 테이블마운틴은 200㎞ 바깥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산 정상 부위가 식탁처럼 평평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4억~5억년 전에 얕은 바다에 형성된 사암 덩어리다. 지각운동으로 솟아올랐다.
해발 363m 지점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해발 1,067m 지점까지 길이 1,200m의 케이블을 올라가야 했다. 65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원형의 케이블카가 출발하면 굳이 이쪽저쪽 경치를 보려고 자리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360도 회전하기 때문이었다. 서쪽에는 669m의 사자머리봉, 동쪽에는 1,000m 높이의 악마의 봉우리가 있었다.
좌우로 3.2㎞나 되는 테이블마운틴에 올랐다. 케이블카가 선 테이블의 한쪽 끝은 1,067m, 또 다른 끝인 맥클리어의 비콘(Maclear’s Beacon)은 1,085m였다. 18m 차이는 평지나 다름없었다. 양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이 있으니 꼭 테이블처럼 생겼다.
걸었다. 1500여종의 식물 가운데로 흙과 돌길이 이어졌다. 가벼운 트래킹 길이었다. 맥클리어의 비콘은 돌무덤을 닮았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멀리 희망봉이 보였다.
이날은 운이 좋았다. 날씨 변덕이 심해 케이블카를 운행할 확률이 60% 정도라고 한다. 아침에 가동했다 오후에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깔리는 날이면 밑에서 올려다 보는 수 밖에 없다. 이곳 테이블마운틴에 하얀 구름이 깔리면서 이 산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식탁보’다.
테이블마운틴에서 뜻밖에 제주도를 만났다. 테이블마운틴과 같이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인 제주도 소개 사진과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제주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등을 떠올려보니 이곳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해발 600m 높이의 바위산을 깍아 만든 9.5㎞ 길이의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코스를 돌아 유람선 타고 헛베이 물개섬을 한 바퀴 돌았다. 수 백마리의 물개들이 섬 하나를 전세내고 있었다. 볼더스 비치에는 30~40㎝ 정도의 펭귄이 백사장을 뒤덮고 있었다. 평생 물개와 펭귄을 이만큼 본 적이 없었다.
헛베이 선착장과 볼더스 비치 입구에는 목각시장이 있었다. 코끼리 사자 등 빅5도 팔고, 북과 원주민 목각도 내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짐바브웨 목각시장이 최고였고, 탄자니아 도로변 시장도 특색있었다. 흥정만 잘 하면 가로 1m 세로 70㎝ 정도의 빅5 목각을 100달러 이하로 살 수 있었는데 운반할 길이 캄캄해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남아공에도 사파리가 있지만 케이프타운 목각시장은 마치 에티오피아 커피를 이곳에서 사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테이블마운틴을 병풍처럼 두르고 대관람차에 현대식 식당과 가게들이 밀집한 부두, 워트프론트로 들어오니 유럽인지 아프리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백인이 많은 케이프타운이었다. 이방인은 헛갈린다. 이땅의 주인이었던 흑인들은 희망봉의 도시에서 희망을 떠올릴까, 절망을 떠올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