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C형 간염, 이제 진단만 하면 치료 가능하다

입력
2020.09.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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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준 대한간학회 홍보이사(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침묵의 병’으로 알려진 간질환은 흔하기도 하지만 방치되거나 외면당하기 쉬운 병이다. 당장 불편한 증상도 없고 주변에 알려지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간질환이라고 하면 과도한 음주나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 간질환은 서구와 달리 술보다 바이러스 간염이 더 큰 원인이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 데도 일부 환자들은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드러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간의 날(10월 20일) 행사는 바이러스 간염 중에서도 특히 C형 간염을 주제로 진행된다. 그 동안 예방 백신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병이 진행됐던 C형 간염이 이제는 매우 쉽게 완치될 수 있다. 최근 의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바이러스의 가장 치명적인 부위를 억제하는 약들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2~3개월만 복용하면 98% 이상에서 완치가 가능하다. 이제는 진단만 하면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셈이다. 그 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마음을 졸이며 살아온 환자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C형 간염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국내 40세 이상 10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증상으로 전파되다 보니 아직 정확한 감염자 숫자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것이 1989년이기에 그 전에 수혈을 받거나 침습적 시술을 받은 사람은 모두 감염 위험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전 만에도 비위생적인 시술이나 의료기구를 통해 수백 명이 집단감염된 적도 있었다.

C형 간염은 한 번 감염되면 70% 가까이 만성으로 악화한다. 증상이 없으므로 검사를 받지 않으면 자신이 감염된지도 모른다. 3명 가운데 1명은 결국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하므로 가능한 한 빨리 진단해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조용했던 간이 반란을 일으킨다. 황달이 생기고 복수(腹水)가 차며 간암이 발병한다. 이런 만성 간질환이 악화돼 평균 수명보다 조기에 생명을 잃는 한국인이 연간 1만8,000명이나 된다. C형 간염은 이런 간질환 사망의 10% 정도 연관돼 있다.

최근 통계 자료를 보면 C형 간암 환자 5명 중 4명은 간암 진단 당시까지도 본인이 C형 간염이 있는 줄 모르고 뒤늦게 진단됐다. C형 간염 환자는 조기에 치료하면 간암을 70% 가까이 예방할 수 있다. 더 일찍 치료하면 간경화나 간암 모두를 예방할 수 있다.

C형 간염은 천연두에 이어 두 번째로 퇴치가 가능한 바이러스 질환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앞다퉈 이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C형 간염 퇴치라는 목표를 세우고 각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최대한 많은 환자를 되도록 빠르게 진단해 치료해야 한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수록 신규 감염으로 인한 C형 간염 환자가 계속 늘어나 바이러스 퇴치가 요원해진다.

따라서 40세 이상 성인은 자신이 C형 간염에 감염돼 있는지 혈액검사를 받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검진을 받거나 병원에서 시술ㆍ수술을 받기 위해 혈액검사를 할 때 항체 검사를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특히 1964년생이라면 올해 9, 10월에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C형 간염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10월 한 달은 혹사당했던 간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C형 간염 검사를 꼭 받기를 권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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