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11년 만에 임금 동결로 합의한 현대차 노사엔 높은 점수가 주어졌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완화되면서 홍삼을 제치고 △추석 인기 선물 세트 1위에 오른 한우와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면서 △횡단보도와 공원길까지 개척한 ‘배달로봇’도 눈에 띄었다. 반면 ▽바늘로 100번을 찔려도, 90도 고열에도 멀쩡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생명력은 동급 최강으로 입증됐다. 신기술로 연결된 혁신을 내세워 주목됐던 ▽테슬라와 니콜라의 경우엔 신뢰도에 흠집이 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정경제 3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겹쳐진 재계엔 초비상이 걸렸다.
● 농성도, 파업도 없었다…11년 만에 ‘임금 동결’한 현대차 노사
언제나 긴장감은 맴돌았다. 때론 노조의 파업 강행 방침에 사측에선 법적 조치로 맞서겠다며 평행차선만 달렸다. 그 사이 막대한 생산 차질은 덤으로 따라왔다. 현대차의 임금협상 테이블이 종종 빚어낸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현대차 노사 협상에선 이런 불상사는 재발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존’이란 공감대 덕분이다. 노사는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150%(기본급 대비), 코로나19 위기 극복 격려금 120만원, 주식 10주 지급에 합의했다. 소상인·전통시장 활성화와 지역경제 기여를 위해 재래시장 상품권도 20만원씩 지급키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이런 내용의 올해 임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전체 조합원(4만9,598명) 찬반투표에서 52.8%로 가결시켰다. 특히 접점 찾기에 성공한 이번 협상에서 보여준 노조의 달라진 태도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다. ‘강성’ 이미지로 굳어진 현대차 노조에서 “회사가 생존해야 조합원도, 노동조합도 유지될 수 있다”면 내부 소식지를 전할 정도다. 현대차의 이번 임금 동결이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3번째인 데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무분규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결과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여파에 사측과 함께 위기 탈출에 나서겠다는 노조의 전향된 자세에 호평은 더해진다. 이제 시선은 임단협에서 여전히 대치 중인 기아차와 한국GM, 르노삼성 등에 쏠린다.
●김영란법 완화에…한우의 ‘귀환’, 홍삼 제치고 추석 선물 1위 탈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부드러운 육질과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비교 불가다. 양질의 영양소는 기본이다. 토종 한우만의 자랑이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1순위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홍삼이나 비타민 등 쟁쟁한 건강 관련 선물세트의 기세에 눌렸던 것도 한우였다. 그랬던 한우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올 추석 인기 선물 순위에서 1위 자리를 꿰찼다. 신세계백화점의 올 추석 선물세트 매출을 뜯어보니 한우 비중이 22.6%로 가장 컸고 2위 건강세트(17.9%)보다 4.7%포인트 앞섰다. 한우를 포함한 전체 정육 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 추석보다 36.6% 증가, 지난해 1위였던 건강 세트의 신장률(20.6%)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우의 귀환'엔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사실 한우는 명절 선물세트 판매에서 줄곧 선두 자리에 머물렀지만 농축수산물 선물 한도를 10만원으로 제한한 '김영란법'이 2016년 시작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강세트에 밀려났다. 하지만 올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코로나19로 위축된 소비 진작을 위해 선물 한도를 20만원으로 높였고 그 효과가 한우로 몰렸다. 귀성을 포기하는 '귀포족'들도 한우로 돌아섰다. 고향 방문을 못 하는 대신 고가의 추석 선물로 성의를 표시하려는 이들의 지갑이 한우에 열린 셈이다.
●’규제샌드박스’도 통과…횡단보도에 공원길까지 개척한 ‘배달로봇’
'A동 OOO호에서 △△떡볶이 2인분 결제 완료.' 주문을 접수한 배달로봇이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 나온다. 공원을 가로지르고 횡단보도를 건너 △△떡볶이 매장으로 들어선다. 기다리던 직원이 미리 포장해둔 떡볶이를 로봇 적재함에 싣자 로봇은 왔던 길을 되돌아 아파트 현관을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OOO호에 도착, '음식배달이 도착했습니다' 메시지를 주문자에게 보낸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현실 속 시나리오다. 조만간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와 도로와 공원길을 지나서 배달하는 로봇이 눈에 들어올 예정이다. 지금까지 관련법상 30㎏ 이상 로봇은 차도는 물론 보도, 횡단보도, 공원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정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면서다. 이번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배달의민족의 로봇 '딜리드라이브'는 대학 캠퍼스나 주상복합단지 등 사유지 안을 벗어나 '진짜 바깥세상'을 달리게 됐다. 앞으로 딜리드라이브는 2년 동안 주행이 허용된 건국대 캠퍼스 인근 식당과 광교 호수공원 주변 식당의 배달을 수행한다. 단순 음식주문 중계 플랫폼을 넘어 실내 서빙, 배달 등 로봇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잡은 배달의민족 측도 실내외 통합 배달로봇 상용화 가속에 청신호가 켜졌다.
●바늘로 100번 찔려도, 90도 고열에도 ‘멀쩡’…지독한 코로나
생명력 하나는 역대급이다. 웬만해선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다. 바늘로 100번을 찔려도, 90도 고열에도 멀쩡하다. 회복력은 초특급 속도다. 공상과학(SF) 영화 ‘터미네이터2’ 속에서 총상을 입거나 어지간한 외부 충격엔 금세 원형으로 복구, 살아나는 액체변형로봇 악당에 버금간다. 동료 검증 학술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지난 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입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게재된 헝가리 세멜바이스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를 전한 20일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다. 연구진의 가혹한 실험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살아남았다. 연구진은 우선 직경 80㎚(1nm=100만분의 1㎜)인 코로나19 입자를 미세바늘로 100번이나 관통시켰지만 모양만 조금 바뀌었을 뿐, 입자는 온전했다. 90도의 열을 10분간 가해도 상황은 유사했다. 무더운 날씨에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란 세간의 희망 섞인 기대는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연구진은 특히 “코로나19가 지금까지 인류에 알려진 바이러스 가운데 최고의 탄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며 “이런 놀라운 자가 치유력은 이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와 인류의 진검 승부에 필요한 시간은 적지 않게 소요될 전망된다.
●”빈 수레가 요란했다”…초가을 ’추풍낙엽’된 테슬라와 니콜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신기술로 점철된 혁신은 커녕 ‘노이즈마케팅’만 연상케 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만 재확인시킨 꼴이다. 지난 23일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몰고 열렸던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에 대한 인터넷 누리꾼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 행사를 앞두고 당초 세간에선 배터리 내재화나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청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과 더불어 글로벌 배터리업체의 지각변동까지 점쳐졌다. 하지만 배터리 데이는 ‘차세대 저비용 고성능 배터리를 대량 양산, 반값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썰렁한 내용이 전부였다. 상실감은 미국 수소전기차 기업인 니콜라에서도 터져 나왔다. 사기 논란에 휘말린 니콜라는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의 이사회 의장직 사임까지 이어졌다. 경고등은 지난 10일 니콜라 사기 행각을 폭로한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 리서치의 보고서에서부터 들어왔다. 이 보고서 발표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는 관련 내용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신뢰 하락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협력사와 벌여왔던 수소 충전소 건설 협상 중단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니콜라의 추락엔 가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결국, 기대를 한껏 받았던 테슬라와 니콜라에 대한 주주들의 실망이 커지면서 양사의 주가는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공정경제 3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초비상 걸린 재계
“정부가 기업을 막다른 절벽을 내몰고 있다” “아예 기업을 죽일 생각인가.”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방안을 이달 28일 입법예고할 것이란 법무부 소식에 재계의 불만은 곳곳에서 터졌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인데, 보호는 커녕 오히려 숨통만 조이고 있다는 비판에서다. ‘집단적 피해의 효율적 구제와 예방을 도모하고 책임 있는 기업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명분이지만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야 할 정부 책임은 어디로 내팽개쳤느냐’는 게 재계의 볼멘소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의 위법 행위로 다중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실제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제도다. 재계는 공정경제 3법에 이어 이번 입법예고안까지 도입되면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영 활동이 더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정부의 정책 추진이 재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으로 직진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정부가 기업부담을 늘리는 법안을 입법 추진하는 것은 기업들에게 경영불확실성을 더욱 키운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며 ”기업에 미칠 파급력이나 부작용 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기업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고 논의하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일보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