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 軍의 안이한 대응 어물쩍 넘겨선 안돼

입력
2020.09.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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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사과에도 청와대와 군 당국의 안이하고 느슨한 대응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중대 사안이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이 희생된 참사를 보고받고도 33시간이나 침묵하고, 군 당국이 상황 발생 6시간 동안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늘 북한 도발에 단호한 대응을 강조하더니 실제론 북한 눈치만 본다는 비난 앞에서 유구무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안이한 행보는 실망스럽다. 청와대 대변인이 24일 “용납할 수 없다”는 대통령 입장을 발표한 건 총살 보고가 청와대에 접수된지 33시간만이다. 청와대는 사실관계 파악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지만 국민 안전을 국정 최고 가치로 삼아온 문 대통령의 굼뜬 입장 표명은 납득키 어렵다. 대통령은 국가위기 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음을 되새기기 바란다.

공식 입장 표명 전 문 대통령은 대북 경고ᆞ규탄 메시지를 직접 발표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총살과 시신 훼손을 보고받고도 군 장성 진급ᆞ보직 신고식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만 강조했다. 24일에도 총살과 시신 훼손이 사실에 가깝다는 보고를 접했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재를 국가안보실장에게 맡기곤 외부 행사 참석차 청와대를 떠났다.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최소 2차례 우리 국민 희생에 강력 대응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음에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물론 25일 북의 사과 통지문대로라면 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신뢰 관계를 고려하며 우발 사태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종전선언을 제안한 23일 유엔 연설과 정면 배치되는 현실 앞에서 당장 사실 관계 확인도 없이 한반도를 긴장 상태로 돌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사안의 심각성에 버금가는 적극적인 대응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북 도발에 강력 응징과 단호한 대응을 늘 공언하다가 6시간 동안 우리 국민의 희생 참사를 손놓고 바라만 본 군 당국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군 통신선 단절은 유치한 핑계다. 도발 사태가 빚어질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상황 종료 후에야 뒷북 엄포만 놓는 그런 군을 두려워할 적국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고, 그런 군을 믿고 의지할 국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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