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위에 노트북PC... 코로나가 바꾼 추석 풍경

입력
2020.10.01 15:30



경기 용인시에 사는 A씨는 1일 아침 어머니와 단 둘이서 추석 차례상을 차렸다. 과일과 어포, 고기 등을 가지런히 상에 올린 뒤엔 차례상이 잘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노트북PC를 설치했다. 평소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모아서 '원격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작동하자 차례상 앞에 앉은 A씨와 어머니가 노트북 화면에 나타났다. 지방에 머물고 있는 할머니와 중국 출장 중인 아버지, 인근에 사는 작은아버지까지 차례로 화면에 등장했다. '한자리' 대신 '한 화면'에 모인 가족들은 서로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탓에 실제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가족들의 표정에서는 반가움이 역력했다.

차례가 시작되자 화면 속 가족들이 순서에 따라 절을 했고, 차례주는 A씨의 어머니가 대신 올렸다. 15분간의 비대면 차례를 마무리하며 가족들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적게는 2대에서 많게는 3~4대까지 한 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시끌벅적하게 음식을 나누는 게 보통의 우리 명절 풍경이지만, 코로나19 유행 속에 맞은 이번 추석 만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날 평생 처음으로 원격 차례를 지낸 A씨 어머니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당연한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온라인 강의 등 평소 비대면 시스템에 익숙한 A씨는 "이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을 못 볼 거라고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비대면으로라도 가족들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바꾼 추석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년 같았으면 휴식과 식사를 하려는 귀성객들로 발디딜 틈 없었을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번 연휴엔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한산했다. 대신 포장한 음식을 차량 내부나 휴게소 건물 밖에서 먹는 귀성객들의 모습이 연휴기간 내내 이어졌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서울역 플랫폼을 가득 채운 귀성객들의 모습도 이번 추석 때는 볼 수가 없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인 데다, 코레일이 창가 위주로만 열차 좌석을 판매하면서 가족끼리도 두 자리 건너 앉아야 하는 '웃픈' 풍경이 연출됐다.

연휴 기간 해외여행객으로 붐비던 인천공항 출국장과 면세구역도 이번 추석엔 한산하기 그지 없다. 반면, 코로나19로 부담스러워진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 여행을 택한 이들이 크게 늘면서 제주 노선을 운행하는 국내선 공항, 제주 국제공항 만은 북새통을 이뤘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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