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꼈다고 안 팔려요"... 사면초가 몰린 갭투자자들

입력
2020.09.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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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인상 전 팔고 싶어도 실거주 못해 인기 없어
웃돈 주며 세입자 내보내거나 시세보다 낮춰 급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아파트를 보유 중인 A씨는 내년 5월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에게 최근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나간다면 전세 보증금에 1,000만원 더 얹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A씨는 "집을 팔고 싶은데 전세를 끼고 있으니 사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웃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낸 후 제값에 파는 게 낫다고 봤다"고 전했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두 달여가 지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특히 가장 난처한 상황에 빠진 이들은 전세를 낀 '갭투자' 임대인이 꼽힌다. 내년 6월부터 부동산 세율이 크게 올라 집을 팔려고 해도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갭투자 1.6만건 전세 만기

27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보증금 승계로 매매된 3억원 이상 서울 주택은 1만6,064건으로 3억원 이상 전체 거래 중 39.2%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계에서는 다음달부터 8개월 동안 수천 건의 전세 만료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전세가 있는 주택을 팔기가 크게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기존 세입자가 주택 매도 전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다면, 새 집주인은 본인 주택에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토부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임대인과 사전에 합의한 후 이뤄진 매매 거래"에 대해서만 예외를 적용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상태다.

집주인들이 주택 매도를 서두르는 것은 내년 6월부터 세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3주택 이상(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소유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은 최대 6.0%까지 책정된다. 규제지역 내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율도 20%포인트 이상 중과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수요자들이 전세 낀 집을 매수할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실거주를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세금 부담까지 안고 집을 사기 쉽지 않아진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까진 9억원 초과 주택을 10년 이상 보유했다면 1주택자는 양도차익의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었는데 내년부턴 보유와 더불어 10년 이상 거주까지 해야 해당 공제율을 적용받는다. 규제지역 내 주택 구매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경우, 6개월 내 전입해야 하는 규제가 시행 중인 점도 변수로 꼽힌다.


"'갭투자'발 집값 하락" 전망도

갭투자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새 부동산세율 적용까지 남아 있는 시간도 별로 없다. 심지어 세입자에게 위로금 명목의 돈을 주고서라도 계약을 끝내려는 집주인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는 "전셋돈에 웃돈을 줘서라도 세입자를 내보내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갭투자발(發) 집값 하락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상반기가 다가올수록 결국 '급매'를 택하는 갭 투자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상담한 고객 중에선 수도권에 갭투자한 주택의 호가를 시세보다 소폭 낮췄다는 다주택자도 있었다"며 "가격 하락 조짐이 보인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일반적인 갭투자자는 양도소득세 부담으로 쉽사리 집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며 "의무 임대기간을 절반 이상 채운 등록 임대주택은 양도소득세 중과에서 배제되니 부동산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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