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섬이 총 몇개인지 아세요?"
제주 태생으로서 남들보다 섬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내심 자부해왔지만 질문을 받고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림잡아 대답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정부도 정확히 모릅니다."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휩쓸고 지나간 후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지난달 21일, 사단법인 '섬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시인 강제윤 소장을 만났다. 대뜸 질문을 던졌던 그는 "정부 부처마다 적게는 3,170개부터 많게는 3,677개까지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마다 발표한 섬 숫자가 다르다"고 말했다.
바윗덩어리도 섬으로 볼 것인지, 나무라도 하나 있어야 섬으로 볼 것인지 등 무엇이 섬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없는 탓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에서는 전자해도와 위성영상 비교 분석을 통해 한국에 무려 1만 2,000개쯤 되는 섬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강 소장은 "이 나라 섬들의 실정이 어떻고, 어떤 문화·생태·역사·경관 자원이 있는지 국가 차원에서 전수조사가 이뤄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며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게 이 나라 섬 정책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해 섬의 원형을 보존하고 문화를 보전, 가치를 증대하겠다는 목적으로 섬 연구소를 만든 지 5년이 지났다.
섬 연구소를 통해 그는 개발 논리에 맞서 섬의 자원을 지켜내고 섬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섬 주민들의 기부채납으로 지어졌지만 진도군이 대기업 콘도업자에게 팔아버리려 했던 관매도의 폐교를 지켜냈고, 실패한 간척사업으로 썩어가는 천연기념물 백령도 사곶해변에 대한 문화재청의 역학조사를 이끌어냈다. 도로공사로 파괴될 위험에 처했던 여서도의 아름다운 돌담들을 지켜내기도 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냈다.
그런 그가 최근 전국구로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태풍 속의 울릉도'를 알리면서다.
'마이삭, 내륙 강타 후 동해로 빠져나가'
'하이선, 한반도 비껴 동해로 진로 변경'
육지 사람들이 마이삭을 겪으며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할 때 울릉도는 그 규모만 600억 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견디고 있었다. 연이어 온 하이선의 진로와 관련해서도 기상청이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지 않고 동해상을 따라 북상할 것'이라고 관측하자 보도는 육지의 피해 전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강 소장은 지난달 7일 섬 연구소 이름으로 입장문을 내 "태풍이 지나며 영향권에 들어간 부산 남쪽 바다에는 사람 사는 섬만 60개가 넘는다"며 "제발 울릉도를, 섬들을 좀 봐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울릉도는 대한민국이 아니잖아요"라는 도민들의 서러움 담긴 목소리가 비로소 육지에 닿았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총리로서는 역대 두번째로 방문했다. 정부는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태풍 때문에 사람들이 울릉도에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 드러났습니다
"육지 사람들이 섬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인식을 못 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태풍이 강릉 동남쪽 150km 지점을 통과했다'고 하는 거죠. 바로 그 지점에 울릉도가 있는데, 태풍이 울릉도를 정통으로 통과하는데도요. 섬 연구소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그냥 조용히 넘어갔을 겁니다."
-섬 연구소가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회 의제화 한 후에야 정 총리 뿐 아니라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병욱 국회의원 등이 방문했죠. 대형 여객선 도입 문제도 그동안 안 풀렸던 게 조금씩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 울릉도 주민들도 수도 없이 제안하고 불만을 표출하고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했지만 서울은 중앙 중심이니 이슈가 안 되면 덮습니다. 섬 연구소는 그 동안 연구를 통해 (울릉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성명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문제점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 했던 걸까요
"인구가 약 1만 명 밖에 안되는 울릉군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포항과 울릉도는 같은 지역구인데 선거가 있어도 정치인들은 울릉도를 안 갑니다. 표가 적으니까. 혹여 (선거 유세 기간에) 섬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 하면 유권자가 많은 지역 유세를 못 가니 손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섬은 열외인 거죠. 그러니 그동안 문제 해결하려고 나섰겠습니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2002년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면서 대표 관광지로 환골탈태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가 나고 자라며 본 제주는 변방이었다. 학창 시절 태풍에 학교 건물이 잠기면 수업은 둘째 치고 모두 물을 퍼내는 데 동원됐다. 당시 제주는 비상이었지만 서울에 있는 중앙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뉴스에는 '해남 상륙'부터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제주가 언급되더라도 '제주는 이미 강타했고 이제 내륙에 진입할 것이니 큰 문제'라는 식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서럽다"고 했더니 강 소장은 말했다.
"제주도 같이 큰 섬도 그런데 작은 섬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독도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울릉도조차도 저렇게 서러운데."
곳곳에서 소외됐던 섬의 입지가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원은 물론 영토적 차원에서 섬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강 소장은 섬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이 고민하며 체계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위한 '섬 데이터 댐', 비슷한 환경적 요건을 갖춘 섬들을 한데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구축을 주장해 왔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섬을 눈 여겨 봐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섬이 갖고 있는 자원의 가치가 있고요. 해양 영토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지고 있죠. 독도를 포함해서 국제 분쟁의 대상으로 섬이 떠오르면서 이제 영토를 비롯해 영공·영해의 경계가 되는 섬에 관심이 쏠리고 있잖아요. 땅을 지키려면 사람이 있어야죠. 사람이 떠나고 무인도가 되면 그 틈을 노리는 세력이 많아지니까요. 그렇다면 수백, 수천 년 동안 섬은 누가 지켜왔을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섬 사람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거고요. 그래서 지금 섬을 눈여겨 봐야 하는 겁니다."
-세계 각국이 섬을 사거나 인공섬을 만들어 영토를 넓히려 하죠
"서해안 섬은 사실상 중국과의 국경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섬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하면 독도를 두고 일본과 벌이는 갈등이 중국과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최서단 섬인 개인 소유의 격렬비열도를 중국인들이 사들이려고 시도하기도 했는데요. 정부도 뒤늦게 안보 및 어업 분쟁 등을 우려해 그 섬이 서해영해기점으로서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규제했죠. 육지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여태까지 섬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것을 잊고 살았지만 그러는 사이 섬의 가치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섬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는 것은 놀라운데요
"그만큼 국가가 제대로 관리를 못 해왔다는 거죠. 섬 숫자도 파악 못 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이미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며 도서종합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몇조 원의 예산을 써왔는데요. 섬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지 파악도 못 하면서 그냥 주로 다리 세우고 도로 만드는데 썼죠. 섬에 다리를 놓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육지로 빠져나가 공동화 현상이 벌어집니다. 섬의 고유성은 지키면서 여객선이나 비행장 등을 통해 교통 편의를 보장해야죠."
-섬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일까요
"중앙 정부가 섬을 지방자치단체에 속해있는 다른 여느 지역들과 똑같이 취급하니 그런 겁니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는데 따로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그냥 놔둔거죠. 그런데 섬은 섬만이 갖는 특성과 어려움이 있어요. 같은 경북이더라도 안동과 울릉도가 비슷한 점이 있나요? 인천과 백령도는요? 상황이 전혀 다르죠. 그렇지만 울릉도와 백령도는 어떤가요. 행정 구역이 경북, 인천으로 다르고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섬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섬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서 관리하고 중복되는 정책을 조율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겁니다."
강 소장은 섬의 중요성과 함께 섬 관련 정책이 부처마다 쪼개져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반해 해외는 이미 분주하다. 중국의 경우 '바다에서 일어선다'는 '해양굴기'를 표방하며 섬을 통한 외연 확장에 나섰다. 일본 또한 낙도 관련 기관인 '이도센터'를 통해 통합적으로 관광 자원 개발 및 정책 연구를 하고 있다. 두 나라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대립하는 것도 이 같은 인식과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가 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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