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돌입한 피아니스트 손민수는 올해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달 초 소니 레이블을 통해 공개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은 그 결실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지금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베토벤 소나타 중 어느 곡 하나 허투루 친 게 없지만, 소나타 29번(작품번호 106번)은 손민수에게 각별하다. '하머클라비어(Hammerklavier)'란 이름으로 알려진 곡이다. 그는 유학 초창기 시절 출전한 어느 콩쿠르에서 이 곡의 1악장을 처음 연주하게 됐다. 그런데 1악장부터 해석이 만만치 않았다.
방향성에 귀띔을 해준 이는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이었다. 손민수가 사사했던 스승 중 한 명이다. 셔먼은 1악장을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 규정했다.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영웅의 도전과 그로 인한 고통이 곡에 배어 있다고 봤다. 손민수는 "작곡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나타는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처럼, 여러 피아니스트들에게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소나타의 4악장까지 완주한 시점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 올해 2월이었다. 마지막 '푸가' 악장은 손민수가 피아노 인생에 걸쳐 꼭 한번 도전해야할 숙제였다. 손민수는 "오랜 시간 이 푸가를 난해하고 기교적인 곡으로 받아 들였던 탓에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시작한 순간부터 부담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손민수는 거장 피아니스트 페루치오 부조니의 분석 등을 꼼꼼히 공부하며 상당시간 연구에 공을 들였다.
"가득 찬 불꽃을 닮은 1악장과, 좁고 험난한 강을 건너듯 숱한 어려움에 부딪치는 스케르초, 한국의 민요를 떠오르게 하는 오음계적인 트리오, 20분이 넘는 연주 시간 속에 인간의 고뇌와 고통, 이를 승화하는 모습을 노래한 아다지오, 푸가의 기원을 끝없는 변형으로 그려나가는 라르고, 그리고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어 피아니스트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념비적인 푸가까지 베토벤은 피아노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곡 안에 집대성했죠." 손민수에게 소나타 29번의 의미다.
교향곡도 아닌데 곡의 길이가 장장 50분에 달한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손민수는 "베토벤 음악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려준다"며 "모든 것을 초월한 자유와 인간의 정신이 이룰 수 있는 기적을 보여준다"고 추천했다. 손민수는 피아니스트 피터 제르킨이 연주한 버전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물론, 이 곡을 "눈이 빠지게 공부한" 손민수의 앨범에서도 명연주를 접할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베토벤의 세계에 원천이 되는 것은 결국 기쁨과 슬픔이라는, 가장 소박하고 순수한 인간의 감정들이었습니다. 인간 감정의 기본에서부터의 시작은 끝없는 탐구와 발견의 여정이 되고, 음악을 통해 진동하는 우주의 한 부분이 됩니다. 베토벤의 이상은 순수하며,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의 양보하지 않는 정신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묻고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