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피해자에게 재심은 치유과정”... 사과ㆍ배상 뒤따라야

입력
2020.10.05 07:00
<25> 뒤늦은 재심과 지연된 정의

편집자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재심(再審)은 확정된 유죄판결에 중대한 흠이 발견된 경우, 사법부의 과거 오판을 바로잡고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국가적으로는 공권력의 남용과 법원의 과오를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지만, 피해를 당한 개인 입장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뒤늦게나마 치유받는 효과도 적지 않다. 국가로부터 받은 피해를 회복하고 추락한 명예를 되찾는 과정을 통해, 장기간 침해당한 피해자의 인간성을 위로하고 달래는 과정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숱한 과거사 재심을 맡아 온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의 말이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한 사법 절차는 보통 두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형사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이어 형사보상금(피의자나 피고인으로 구금됐다가 불기소 결정 또는 무죄 판결 이후 받게 되는 보상금) 청구나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에 나선다.

그런데 과거 누명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던 피해자들은 사후 회복을 위한 재판 과정에서 신체ㆍ정신적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한다. 인권의학연구소가 올해 4월 발표한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후속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과거사 피해자 61명 중 53명(86%)이 재판 과정에서 고문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다고 답했다. 어렵사리 법정에 다시 선 피해자들에게 "왜 당시 검찰이나 재판부에 고문사실을 밝히지 않았냐"라거나 "왜 그때는 혐의를 시인했냐"는 식으로 추궁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국가의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민사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상처를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민사에서는 피해자가 국가에 의한 고문과 불법구금 사실을 입증할 책임을 지는데, 이 때 "국가의 불법행위 증거가 있냐"라거나 "위자료 액수가 과하다"는 적반하장식 태도가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남긴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국가 입장에서 위자료 액수나 청구권 소멸시효를 문제 삼을 수는 있어도, 그에 앞서 일단 피해에 대한 국가의 인정과 사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결국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사법적 절차를 넘어 △진상규명 △국가의 사과 △배상ㆍ지원 △재발방지 제도화 △교육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다. 올해 5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기 진실화해위'가 연내 출범할 전망이지만, 여전히 국가가 진지한 반성을 통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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