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30년 기록 앞에…이춘재 사건 세명의 경찰 입 열게 한 영상

입력
2020.10.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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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뒤늦은 재심과 지연된 정의

편집자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간이 조명될 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법조계. 철저히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세상에는 속설과 관행도 무성합니다. ‘법조캐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일보>가 격주 월요일마다 그 이면을 뒤집어 보여 드립니다.
"저는 15년 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여기 서 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가 소년과 가족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 <재심> 중 변호사 준영의 마지막 대사

사람의 기억은 시간 앞에 무력하다. 또렷했던 기억은 시간과 부대끼며 흐려지고, 바래다가, 결국 사라진다. 중대한 오류가 있었음이 분명한 재판을 바로잡는 동안, 억울한 피고인의 청춘은 가고, 심지어 피고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무고함을 입증할 물적 증거도 사라지고 도와 줄 사람마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피해자 곁엔 범죄자라는 오명과 응어리진 회한만이 남게 된다. 누명을 쓰고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을 사후에라도 구제할 유일한 절차인 재심(再審)은, 그래서 검사와의 싸움이라기보단 시간과의 싸움이라 일컫는 게 맞다.

사라진 수사기록과 희미한 기억

살인범 누명을 쓴 윤성여(53)씨도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중 유일하게 범인이 검거된 사건으로 알려졌던 '8차 사건'. 그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을 복역한 이가 바로 윤씨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경기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경운기 수리센터에서 일하던 22세 청년 윤성여를 진범으로 지목했고, 결국 윤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를 검거한 경찰관들은 특진을 했고, 윤씨는 2009년 감형돼 출소하기까지 20년을 복역했다.

다시 10년이 흘러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57)가 잡혔고, 이춘재는 "8차 사건도 내가 한 짓"이라고 고백했다. 사건 30년 만에 윤씨가 누명을 벗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윤씨는 "이춘재가 지금이라도 자백해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이춘재의 자백이 곧바로 윤씨의 무고함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진범의 멍에를 벗으려면 법원에서 재심 허가를 얻어,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 그 다음 재심 법정에서 당시 강압수사가 있었고, 그 강압수사 때문에 자백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흘러버린 30년 세월이 윤씨의 발목을 잡았다. 속사정을 알 만한 사람들은 죽거나 사라졌고, 관련 기록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사건을 맡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수사기록이나 증거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리 소문 없이 폐기돼, 갈수록 실체 파악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엔 8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 기록이나 재판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어, 윤씨가 누명을 벗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던 곳에서 단서가 나타났다. 당시 윤씨를 검거해 특진한 경찰관들의 공적서류에 수사기록 사본이 첨부된 채 남아있던 것. 역설적이게도 강압수사에 관여한 경찰관의 공로를 담은 서류가, 수십년 뒤 그들의 과오를 입증할 증거가 됐다.

경찰 특진 서류에서 강압수사 단서 발견

윤씨와 박 변호사의 노력 끝에 최근 8차 사건 재판에 강압수사 의혹을 받는 '특진 경찰관'들을 찾아 증인으로 세울 수 있었다. 법정에 선 그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했느냐"며 몰아세우기만 했다가는, "아니다"라거나 "기억에 없다"는 답이 나올 게 뻔했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마지막 양심에 호소하기로 했다.

박 변호사는 증인신문에 앞서 영상을 보여줬다. 미국의 전직 검사가 30년 전 자신이 살인범으로 잘못 기소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를 찾아가 사죄한 영상이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에선 피해자보다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한 검사가 회자됐다"며 "증인도 용기를 내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증인석에 앉은 세 명의 전직 경찰관 모두 윤씨에게 사과했다. 특히 한 전직 형사는 진술 조서를 꾸미고, 사흘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는 등 강압수사 정황을 인정하면서 진심어린 사죄를 구했다.

진상규명은 스스로... 인색한 법원 검찰

언뜻 당연한 결론이 신속하게 나올 것으로 보이는 재심 절차는 실상 매우 까다롭고, 가능하더라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선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받는 절차부터 쉽지 않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형사1심이 재심청구를 기각한 비율은 64.5%에 달하는데, 재심청구자 셋 중 한 명 정도만 재심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재심을 받으려면 당시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나, 과거 수사ㆍ재판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 증거는 재심 청구 당사자나 유족이 직접 찾아야 하고, 여전히 과오를 인정하는 일에 인색한 수사기관들이 기초적 자료 열람조차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반공법ㆍ국가보안법 피해자 A씨도 이런 상황을 겪었다. 그는 1970년 4월 경찰관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고문당했다. 10년 전 일본으로 떠나 왕래가 없던 아버지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이라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가 대학 입학을 계기로 보낸 안부 편지와 학비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금품수수ㆍ통신'의 증거로 둔갑됐다. 고문을 못 이겨 허위자백한 A씨는 징역 1년을 받았다.

자식들에게까지 사실을 숨기며 50년을 속앓이한 A씨는 지난해 재심 청구를 결심했지만, 첫 발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건은 '(준)영구 보존 사안'이라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검찰은 '국가 안보를 해할 우려가 있다'는 모호한 이유로 두 차례나 기록 열람을 막았다.

A씨는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불복소송을 냈고, 법원 판결로 열람신청 8개월여 만에 겨우 기록을 받아볼 수 있었다. A씨 대리인인 나대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당시 A씨의 체포일자가 수사기록마다 엇갈리는 등 위법수사 정황이 확인돼 재심을 청구한 상태"라고 밝혔다.

세상에 알려진 형사재심 사건 중에는 유독 장애인(삼례 나라슈퍼 사건)이나 미성년자(익산 약촌오거리 사건), 가정폭력 피해자(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 사회적 약자가 누명을 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명이 명백하더라도, 재심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조차 어렵고 법률적인 조언을 받기도 쉽지 않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은, 어쩌면 재심 피해자들의 처지에 가장 들어맞는 격언일지도 모른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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