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 살아남는 법

입력
2020.10.10 11:00
12면

놀이공원 ‘귀신의 집’이 어릴 적 그토록 무서웠던 건,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싹하지만, 재미있었다. 튀어나오는 귀신들이 실은 인형들이고, 컴컴한 통로를 조금만 지나면 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측 가능한 출구를 전제로 하는 약간의 두려움, 그것은 놀이가 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힘든 이유는 학교에 못가고 매출이 떨어지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힘든 이유는 전에는 예측 가능했던 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된 것,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있다. 다음 주엔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을까? 내년에는 정상 등교가 가능할까? 다음 달에 하기로 한 행사는 예정대로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과연 끝날까? 코로나19 다음엔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날 거라는데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에 또 다른 불확실성이 추가됐다. 폭우는 언제 그칠까? 언제 또 태풍이 올까? 올해는 폭우가 왔는데, 내년엔 가뭄이 들까? 장장 6개월간 계속됐던 호주 산불에 이어, 몇 달째 꺼지지 않는 캘리포니아 산불, 아마존 산불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기후위기는 곧 식량의 위기로 이어질 텐데, 인간은 이 별에서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감염병과 기후위기가 겹친 거대한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에게서 인간에게 전이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야생동물이 우리에게 온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간 것이다. 그들의 숲을 밀어내 도시를 만든 것도 모자라 잡아먹고, 애완용으로 키우고, ‘이색동물’ 까페에서 주물럭거리고, 심지어 유치원과 학교에 데리고 다니며 어린이들이 만지게 한다. 야생동물과의 접촉면이 늘어났고, 야생동물을 숙주 삼았던 바이러스는 인간이라는 또 다른 숙주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게 됐다.

데이빗 콰먼의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번역한 소아과 전문의 강병철은 역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나무를 자르고 토종 동물을 도살할 때면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병원체가 주변으로 확산된다. 밀려나고 쫓겨난 미생물은 새로운 숙주를 찾든지 멸종해야 한다. 그 앞에 놓인 수십억 인체는 기막힌 유혹이다. 이들이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거나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

야생동물과의 접촉면을 늘린 인간은, 어마어마한 수의 가축을 사육함으로써 또 다른 방식으로 동물과의 접점을 늘려 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800억 마리의 가축이 식용으로 길러지고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만 1,700만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의 닭이 도살됐다. 공장식 축산의 밀집 사육은 바이러스 번식과 변이에 최적의 조건이다. 2009년 세계를 휩쓸고 나의 어린 아들도 걸렸던 ‘신종플루’는 공장식 양돈농장의 돼지에게서 인간에게 바이러스가 전이되어 발생한 ‘돼지독감(Swine Flu)’이었다. 전염병 전문가들은 닭, 오리 등 조류의 바이러스가 돼지의 몸에서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전이될 경우, 매우 치명적인 팬데믹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설상가상, 공장식 축산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유엔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에서 나오고 있다. 감염병과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되지 않으려면 식생활을 채식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과학자들의 진지한 경고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상태일까?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구가 버텨줄까? 적어도 이 별에서의 생존은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황윤(영화감독, '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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