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우리는 BTS 콘택트 렌즈를 낀다

입력
2020.10.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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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굿즈의 세계, 어디까지 가봤니



방탄소년단(BTS)의 팬이자 유튜버 '릴리리야'는 4년 동안 BTS의 굿즈(특정 연예인이나 콘텐츠, 브랜드 등과 관련해 출시하는 기획상품)를 구매하는 데만 1,000만원 이상을 썼다. 릴리리야는 그간 차곡차곡 모은 굿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BTS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관련 굿즈를 꼽았다. 그는 “콘서트 당일 부스에서만 판매하는 이 투어 굿즈를 구하기 위해 밤새 줄을 섰는데, 대규모 인파에 우산을 쓸 수 없어 비를 쫄딱 맞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룹 워너원 출신 뉴이스트 멤버 민현의 팬인 정수연(26)씨는 민현의 포스터를 얻기 위해 맥주를 수십 병 마신 적이 있다. 당시 워너원을 모델로 내세웠던 한 맥주 브랜드가 맥주 세 병당 포스터 한 장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포스터를 여러 장 받기 위해 그만큼 맥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정씨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 취해서 돌아가는 와중에도 포스터는 꼭 챙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K팝 글로벌화에 굿즈도 진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글로벌 스타로 성장하는 등 K팝 그룹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면서 굿즈의 세계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콘서트에서 쓰이는 공식 응원봉과 풍선, 의류, 대형 포스터, 우산ㆍ가방ㆍ머그잔 등 일상 생활용품은 기본이고 식료품과 각종 상품으로 폭넓게 진화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렌즈 브랜드와 협업해 눈에 끼는 컬러 콘택트 렌즈를 출시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컬러 렌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렌즈 둘레를 따라 새겨진 알파벳 BTS가 쓰여 있다. 독특한 콘셉트의 굿즈에 팬들 사이에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를 형상화한 것이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블랙핑크는 멤버 사진이 들어간 보드게임을 내놨다. 게임판과 게임용 화폐, 말과 카드에 블랙핑크 멤버들의 얼굴과 노래 가사가 들어갔다. 주사위를 굴려 건물 대신 공연장과 무대를 짓고, 식탁에도 아이돌 굿즈를 올린다.

주방용품 굿즈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트와이스 정연의 얼굴이 들어간 냄비받침, 오마이걸 공식 팬클럽 키트에 포함된 밥상세트, 동방신기 최강창민이 직접 만든 문구가 프린트된 와인잔 등을 모으면 식탁 위를 아이돌 가수의 얼굴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귀한 아이돌 굿즈는 부르는 게 값

아이돌 핵심 팬층이 10대에서 30~40대로 확장하면서 굿즈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일부 상품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기도 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품은 중고 시장에서 몇 배 가격으로 거래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8년 한국조폐공사는 그룹 엑소의 얼굴이 들어간 ‘스페셜 패키지 메달’ 세트를 100개 한정 판매했다. 99.9% 순은으로 제작된 이 메달 세트는 148만5,000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올해 BTS와 스타벅스가 협업해 제작, 판매한 기획상품은 일반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에 출시됐는데도 금세 완판을 기록했다.



바다를 건너왔거나 출시 시기가 오래 돼 귀해진 굿즈는 가격이 더 오르기 마련이다. 2015년 일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공식 팬미팅 ‘언더커버 미션’에서 판매된 응원 피켓(부채)은 원가 800엔(약9,000원)인데 지금은 중고 시장에서 20만~30만원선에서 거래된다.


아예 직접 굿즈를 만드는 팬들까지

연예기획사와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공식 굿즈가 아닌 비공식 굿즈도 있다. 기획사에 저작권 허가를 받지 않고 아이돌 팬들이 비공식적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것인데, 때때로 공식 굿즈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기도 한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팬들의 정성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에 팬들이 더욱 선호하는 것이다.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한 아이돌 가수 사진이나 이 사진으로 만든 포토북 등은 희소 가치가 높아 팬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된다.


한땀 한땀 직접 재봉틀을 돌리고 뜨개질을 해 만든 인형 옷도 인기다. 다양한 패턴과 장식으로 만든 인형 옷과 모자, 신발은 사람 옷 못지않은 섬세함을 자랑한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외모를 본 따 만든 인형에 입힐 옷을 구매하는 데 팬들은 지갑 열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밖에 아이돌 가수가 방송이나 콘서트ㆍ팬미팅에서 했던 말 중 의미 있는 것을 모아 만든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 등도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상품들이다.


굿즈, 팬덤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굿즈는 아이돌 팬들 간의 친밀감도 강화한다. 이들은 굿즈를 주고받으면서 구매욕을 채우는 한편 공통의 관심사로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SNS상에서 이뤄지는 ‘주불(‘주소 불러’의 줄임말)’이 대표적이다. 주불은 일종의 무료 나눔 문화인데 굿즈를 보내줄 테니 주소를 알려 달라는 뜻으로 쓰인다. 팬들은 자신의 SNS 계정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또는 소셜 미디어상 친구가 된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굿즈를 주고 받는다.

굿즈를 직접 제작해 나눠주는 이벤트도 종종 열린다. 아이돌 가수의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에 커피숍을 대관해 컵홀더 같은 굿즈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여는데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굿즈를 받은 팬들은 단체 사진을 찍거나 SNS에 ‘인증샷’을 올려 특별한 날을 함께한다는 기분을 만끽한다.

팬들은 굿즈를 모으는 것이 개인적 팬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정수연씨는 "굿즈는 팬클럽 내부의 소속감을 단단하게 하고 더 적극적인 팬 활동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의 공연과 상품을 소비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팬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때로는 디자인이나 이벤트 기획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굿즈는 단순히 팬심을 이용한 상술을 넘어 K팝 산업을 움직이는 팬 문화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김단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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