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 잡힌다"던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베트남서 검거

입력
2020.09.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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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캄보디아로 출국→이달 베트남으로 현지 경찰과 공조 통해 22일 은신처서 붙잡아


성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게재한 온라인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서버를 옮겨 사이트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2기 운영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국제공조수사를 통해 운영자인 30대 남성 A씨를 전날 오후 호찌민에서 검거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교도소 사이트와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ㆍ운영하며 디지털성범죄, 살인, 아동학대 피의자 신상정보를 무단 게시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다.

앞서 경찰은 지난 5월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수사에 착수, 지난달 6일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후 A씨가 해외에 체류 중인 사실이 확인돼 지난달 30일 인터폴 국제공조수사를 요청했다.

A씨는 지난해 2월 국내에서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최근 베트남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지난 7일 이 같은 첩보를 입수, 베트남 공안부 코리안데스크(한국인 사건 전담부서)에 A씨 검거를 요청하는 한편 인터폴 적색수배서를 발부받았다. 베트남 공안부 수사팀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A씨 신원을 특정, 전날(현지시간) 오후 6시쯤 현지 은신처로 귀가하던 A씨를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송환 절차는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7월 세계 최대 규모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24)에 대해 한국 법원이 미국 송환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손씨를 비롯해 110여명의 이름과 사진, 나이, 직업 등이 구체적으로 게재됐다. 사이트 운영진 측은 당시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운영 목적을 설명했다. A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동유럽의 방탄 서버를 통해 서버를 운영 중이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사이트의 문제는 운영진들이 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특정인을 범죄자로 모는 등 무분별한 사적제재를 지속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도 발생했다. 대학 교수 B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 성착취물을 구입 시도했다는 이유로 디지털교도소에 신상과 대화 내용이 공개됐는데, 경찰이 B씨의 휴대폰 등을 수사한 결과 사이트에 게재된 것과 같은 내용의 대화창이나 삭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3일에는 디지털교도소에 신상공개된 대학생 C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디지털교도소는 잠정 폐쇄됐다가, 2기 운영진이라고 밝힌 이들이 입장문을 올린 뒤 운영을 재개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B씨 등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도 "디지털교도소는 이대로 사라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사이트"라며 지속적으로 사적 제재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입장문이 게재된 페이지에 적힌 특정 링크를 클릭하면 과거 게재됐던 신상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1기 운영진의 활동을 이어 받은 2기 운영진을 공범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 중대성을 고려해 남은 운영자들에 대한 집중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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