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美국방부, 코로나 대응 예산 방산업체 지원에 전용"

입력
2020.09.23 11:33
10억달러 마스크ㆍ검사장비 대신 군복 등에 지원
"의료 장비에만 사용하라는 명시 없어" 해명

미국 국방부가 의료 장비 공급 목적으로 지원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 예산 10억달러(약 1조1,640억원)를 제트엔진 부품ㆍ방탄복ㆍ군복 등을 생산하는 방위산업 기업에 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어선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허점이 또다시 드러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미 의회가 지난 3월 경기부양 패키지법(CARES Actㆍ케어스법) 통과로 마스크ㆍ진단장비 공급 목적으로 국방부에 지원한 10억달러가 군수품 생산에 쓰였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 지원금으로 해소됐어야 할 (보건용) N95 마스크 부족 현상을 여전히 겪고 있다"고 WP는 덧붙였다.

공공 기록과 개별 계약 내용, 의회 증언 등을 종합해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미 의회는 3월 당시 국방부에 1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기업들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통해 개인보호장비(PPE) 등을 생산하게 하라고 전달했다. 하지만 지원금이 배정된 지 몇 달 후, 국방부 변호사들은 이 돈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들을 포함한 국방물자 생산에 사용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원 분야별로 군함 건조 사업 유지를 위해 롤스로이스와 아르셀로미탈에 1억8,300만 달러를, 캔자스의 항공기 부품 회사에 8,000만달러, 군복 제조업체에 200만달러 등을 사용했다. 일부 기업은 다른 지원 자금을 받고도 중복해서 예산을 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미국이 현재도 코로나19 대응에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주 의회에 출석해 내년 초 백신 공급을 위해서는 6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국방부는 의회에 현재 논의 중인 새로운 경기부양법안을 통해 110억달러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하원 세출위원회는 이러한 예산 전용을 DPA 위반으로 보고 있다. 위원회는 2021 국방법안 보고서에서 '방위산업보다 PPE 문제 해결에 사용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2명은 WP의 보도 직후 공개 청문회를 요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제시카 맥스웰 국방부 대변인은 "케어스법은 의료 장비 공급에만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며 "산업 기반의 코로나19 영향을 다루는 한 예산 사용은 적절하다"고 해명했다. 엘렌 로드 국방부 획득운영 차관도 "경제안보와 국가안보는 매우 밀접하게 상호 연관돼 있고 산업 기반은 이 둘의 연결고리"라고 밝혔다. 또 방산업체들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경기 침체기에도 기업이 생존하려면 자금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WP는 “10억달러는 의회가 올해 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승인한 케어스법 전체 규모 3조달러의 극히 일부"라며 "지원금이 어떻게 원래 목적과 다르게 쓰일 수 있고 의회가 이 과정에 개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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