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창 북적 낚시대회, 따로 뛰는 마라톤 '언택트, 이게 되네'

입력
2020.10.01 16:00


지난 9월 13일 경북 영덕군 강구항. 아이디(ID) 'RP날아라봉돌'이 힘껏 던진 낚싯대가 요동치자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로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기대감 넘치는 반응이 채팅창을 점령했다. 강한 힘으로 낚싯줄을 감아올리자 물 밖으로 튀어오른 물고기가 힘차게 퍼덕거렸다. 경기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RP날아라봉돌이 낚아 올린 물고기 중 가장 큰 두 마리는 42.3㎝와 33.4㎝짜리 황어. 도합 75.7㎝로, 경남 사천시에서 대회에 나선 2위 참가자(71.9㎝)를 꺾고 1위를 차지했다. 아프리카TV를 통해 이번 '언택트(비대면) 낚시 대회' 랜선 응원에 나선 이는 2차 대회 기준 누적 10만여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이색 대회들이 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수개월씩 대회를 늦추거나 아예 대회를 취소하는 결정이 다수였지만, 언제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자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 '온택트(온라인+언택트) 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많아진 것이다.

언택트 대회의 핵심은 플랫폼 기술이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는 만큼 신빙성 있는 결과를 위해서 다양한 생중계 플랫폼이 사용된다. 지난달 13일부터 예선이 진행되고 있는 '제1회 렉스턴 스포츠 낚시 대회'의 경우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아프리카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물고기 길이를 측정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경기 결과를 공개한다. 시청자들은 20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제주도부터 강원 삼척시까지 각자의 장소에서 송출하는 생중계 영상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아낌없는 응원을 쏟고, 물고기를 낚는 순간부터 계측하는 순간을 함께 지켜보는 '공동 심사위원'이 되기도 한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출발해 도시를 누비던 여러 마라톤 대회는 '각자 뛰는' 대회로 바뀌었다. 9월 19일부터 진행된 '제1회 한성백제마라톤대회'의 경우 16일의 기간 중 본인이 원하는 시간 아무 때나 스마트워치나 스마트폰 등을 지참하고 정해진 코스를 달리면 된다. 달리는 시간과 속도, 경로 등을 기록해주는 앱을 활용해 '인증샷'을 비대면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회에 참가가 가능하다. 달리는 코스가 정해지지 않은 대회도 있다. 이달 30일 시작하는 '라이프플러스 JTBC 서울 마라톤'의 경우 참가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달린 뒤 '나이키 런 클럽' 등 특정 앱을 통해 기록을 남기는 방식으로 대회에 참여한다.

온라인 플랫폼에는 국경이 없는 만큼, 평소였으면 모이기 힘들었을 스포츠 선수들이 한 대회에서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올해 7월 개최된 'UMB 버추얼 원캐롬 챌린지'의 경우 전 세계 선수들이 각자의 집에 카메라가 설치된 당구대를 놓고 인터넷 중계를 보면서 대결을 진행했다. 서울에서 경기에 참여한 조명우 선수와 독일에서 중계를 시작한 '당구황제' 토브욘 브롬달 선수 사이에는 무려 8,600㎞에 달하는 물리적 거리가 존재했지만,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된 이번 온택트 경기에서 이 숫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각종 전시회와 콘서트도 안방으로 성큼 찾아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개최한 언택트 콘서트는 평소보다 훨씬 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팬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수백억원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올해로 90회째를 맞는 제네바 모터쇼는 올해 3월 일찌감치 온라인 모터쇼로 전환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전시를 온라인에서 꼼꼼히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앞으로의 '뉴 노멀'을 이끌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각종 기술력을 동원해 비대면으로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된 셈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있다. 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대형 행사를 위해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안정화하는 것은 쉬운 기술이 아니다"라며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기술력과,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 아이디어를 가진 곳이 업계에서 앞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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