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환수' 못지 않게 '현지 활용'도 고민해야죠"

입력
2020.09.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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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나전합 환수 성사시킨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해외 문화재를 환수하는 사업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현지 활용을 도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조건 '해외 문화재=환수 대상'은 아니라는 거죠."

22일 서울 마포구 재단 집무실에서 만난 최응천(61)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7월 세계에서 단 3점 밖에 없다던, 일본에 있던 고려 나전합 환수를 성사시킨 것치곤 이례적 설명이다. 재단은 '환수' 못지 않게 '현지 활용'도 중시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012년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으로 출범한 재단은 이제껏 38건(754점)의 문화재를 환수했다. 그에 못지 않게 최근까지 해온 활동은 해외 23개 기관, 42건 문화재에 대한 보존, 복원 사업이다.

지금도 미국 데이턴미술관이 보유한 20세기 초의 작품 '해학반도도 병풍'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국내로 들여왔고 11월 작업이 마무리되는대로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회도 연다. 이 작업이 특히 의미 있는 건, 그간 손상이 심했던 탓에 외부 공개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직접 고쳐줌으로써 수장고에서 꺼낼 수 있었고, 한국 전시까지 성사된 것이다.



최 이사장은 "우리 문화재라는 이유로 당장 환수를 요구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소장 기관과 신뢰를 쌓아 나가면서 상대에게 '우리가 훨씬 더 잘 보존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런 장기적 접근이 쌓여야 환수를 할 때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단 해외 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문화재를 끄집어 내는데 '현지활용'만큼 좋은 카드도 없다는 얘기다.

재단이 파악한 해외 소재 문화재는 올해 4월 기준 19만3,136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2%가 일본에 집중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조심스럽다. 자칫 민족감정으로 치우칠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어서다. 최 이사장은 "해외 문화재라면 불법 반출이라 속단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여기에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라 해서 우리가 그냥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답은 관계와 신뢰다. 고려 나전합 환수도 그렇게 성사됐다. 최 이사장은 나전합 환수 작업에 대해 "14년 동안 알게 모르게 공을 들인 작업"이라 했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춘천박물관장 등을 지낸 실무자 출신 미술사학자. 박물관 실무자로 일할 때부터 일본과 쌓아온 관계가 큰 도움이 됐다. 최 이사장은 "이사장 임기 동안 일본과의 그런 관계를 공고히 해서 숨어 있는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이 발굴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암초가 생겼다. 코로나19 사태다. 해외 조사는 엄두를 내기 어려워졌다. 온라인을 통해 해외 경매를 열심히 추적 중이다. 최 이사장은 "문화재 환수와 현지 활용 작업은 해외 조사에서 시작되는데 답답한 상황"이라며 "활발한 현지 조사를 위해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에도 현지 사무소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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