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풀렸나… 정치인들의 느슨해진 거리두기

입력
2020.09.22 16:10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총리 선출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위기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입원한 같은 당 소속 의원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먹 인사’를 나눴기 때문이다. 난 데 없는 코로나 이슈로 일본 정계가 바짝 긴장한 것은 당연하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 정치인들 또한 접촉자가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항상 안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국내 정치인들의 안일한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당시만 해도 정치인들은 직접 접촉인 악수 대신 주먹 인사와 팔꿈치 인사, 목례 등 다양한 코로나식 예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거리두기를 무시하거나 스스럼없이 악수를 나누는 등 방역지침에 어긋난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내 코로나19 재확산 사태 속에서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정치인들의 이 같은 모습은 국민적 불안감마저 키운다.

국회의원과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이 수시로 대면하는 국회의 경우 철두철미한 방역 활동마저 무색할 정도다.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간사 백혜련 의원은 서로 손을 꼭 잡고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당시 두 사람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으나 머리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보기 불편했다. 거리두기를 위해 설치된 투명칸막이는 무용지물인 셈이었다. 질병관리청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악수 대신 목례하기 등의 방역지침을 수시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날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처 관계자로부터 귀엣말로 보고를 들었다. 사실, 귀엣말은 정치인들의 관행이자 상징적인 포즈로 통한다. 상임위에 출석한 국무위원들 역시 의원들의 질의에 말문이 막히거나 상세한 답변이 필요할 때 배석한 관료로부터 귀엣말 보고를 듣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비상 상황인 만큼 거리두기를 무시한 귀엣말 보다 메모를 활용하는 편이 안전해 보인다.

지난 17일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목격됐다. 아예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칸막이를 넘어 추 장관과 대화를 했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거리두기를 무시한 채 코 앞까지 다가온 같은 당 윤관석 의원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도 초청 인사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불교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악수를 나눴다. 당시 간담회장으로 입장하며 두 손으로 합장 인사를 하는 문 대통령에게 원행스님이 갑작스럽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요청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지 않고 두 손으로 악수를 받은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면 거절하기 어려운 우리 문화의 특성상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엄중한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대통령의 방역수칙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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