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장애 아이 엄마들 무릎을 꿇게 했나

입력
2020.09.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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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해도 좋습니다. 때리면 맞겠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절대 포기 못합니다.”

반대하는 주민들의 고함과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들이 눈물 흘리며 무릎 꿇었다. 아이를 위해 특수학교만은 짓게 해달라는 호소였다. 2017년 서울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 토론회의 한 장면이었다.

27일까지 서울 혜화동 동양예술극장에 오르는 극단 신세계의 ‘생활풍경’은 바로 이 ‘무릎 호소’ 사건을 다룬다.

이유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 사회의 살풍경, 그 자체여서다. 김수정 연출은 “토론회에서 오간 말들에서 드러난 무의식적인 차별과 혐오,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대가 곧 토론장이다. 관객은 입장 때 질문을 받는다. 장애인 특수학교를 지지하는지, 대신 국립한방병원을 지어야 하는지. 선택에 따라 앉는 자리가 나뉜다. 객석은 방청석, 관객은 토론회 참석 주민이 된다. 객석 중간중간에 섞여 앉은 배우들 또한 주민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극사실주의다. “장애인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한방병원이어야 한다”는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특수학교가 집값을 떨어뜨리는 건 아니라는 설득에, 장애인 시설은 이미 많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방청석도 달아오른다. 상대편을 향한 삿대질과 야유와 막말이 쏟아진다. 무대 난입에 몸싸움까지, 아수라장이 된다.

이 난장판에서, 몰래 사라진 인물이 하나 있다. 원래 교육청 소유의 학교 부지였던 곳에다 한방병원을 짓겠다고 공약한,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난감해진 교육감은 그저 공사를 아직 시작한 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한다. 이런 모순 해결에 팔 걷는 지도자는 없다.

모순은 주민에게도 있다. ‘특수학교는 괜찮지만 우리 동네는 안 괜찮다’ ‘장애인과 공존해야 하지만 우리 동네는 아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같은 앞뒤가 다른 이중적 언행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나는 도덕적으로 옳게 행동하고 있다’는 개개인의 굳건한 믿음에 균열을 만든다.



연극은 그래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극을 시작할 때는 토론자가 객석을 등지고 앉아 있지만 이내 토론 테이블을 돌려 객석과 마주본다. 관객은 제3자에서 당사자가 된다. 막바지엔 찬반 양측 토론자가 자리를 맞바꾼다. 관객은 일순간 찬반 입장을 뒤집어야 한다. 김 연출은 “내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 그게 차별과 혐오를 만든다는 걸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만큼 언론 보도, 실제 토론회 영상, 인터뷰, 관련 사례와 논문 등을 참고해 극단 단원 모두가 함께 대본을 썼다. 단원들끼리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극이 탄탄하고 몰입도가 높은 이유다.

그래서 장애인 특수학교는 세워졌을까. 연극은 그것까진 보여주지 않는다. 김 연출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직접 그 결과를 검색해서 찾아보게 하고 싶었다”며 “그래야 단지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우리 모두, 아직은 좀 더 불편해져야 한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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