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 지원금, 통장에 입금되는 족족 현금 출금됐다

입력
2020.09.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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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금ㆍ기초연금 등 8년간 4억 입금
국민성금 1억원은 1시간도 안돼 빠져나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 머물렀던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의 통장에 매달 정부 지원금이 들어온 직후 전액 현금으로 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길 할머니는 2012년부터 서울시 등에서 생계 지원금을 받아왔는데, 길 할머니가 마포쉼터를 떠나기 전인 올해 6월까지 8년간 길 할머니 통장에서 4억원 가량의 돈이 인출됐다. 길 할머니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주체와 그 용처에 대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21일 한국일보가 길 할머니 통장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길 할머니가 정부 지원금을 수령한 201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략 4억원에 가까운 돈이 길 할머니 통장에서 '현금 출금'의 형태로 빠져나갔다.

현재로선 누가 은행에 찾아가 길 할머니 통장을 창구 직원에게 보여주고 돈을 찾았는지, 또 이 현금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길 할머니는 고령인 데다가 몸이 불편한 상태라서, 길 할머니 주변에서는 할머니 본인이 매번 이 돈을 인출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길 할머니 가족들에 따르면, 할머니는 2015년부터 경증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2016년, 2017년쯤 중증 치매로 진행됐다.

길 할머니는 국민은행과 농협은행 통장 두개를 갖고 있다. 국민은행 통장에는 2012년 7월부터, 농협은행 통장엔 2015년 1월부터 정부 지원금이 입금됐다. 길 할머니가 받는 지원금은 해마다 조금씩 늘었는데, 최근엔 서울시와 마포구 등으로부터 주거비 등 명목으로 350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30만원)과 보조금을 합치면, 매달 380만원가량이 들어오는 셈이다 .

그러나 길 할머니 통장에 들어온 돈은 거의 입금과 동시에 전액 현금출금 형태로 빠져나갔다. 통장 내역을 살펴보면 지원금이 들어온 당일 바로 전액 출금된 경우가 많았다. 올해 3월 길 할머니의 농협은행 통장 내역을 보면, 3월 13~18일 사이 서울시와 마포구에서 총 312만원의 지원금이 입금돼 통장엔 총 501만원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3월 18일 곧바로 400만원이 현금으로 인출됐다. 이외 7만원이 후원금으로 빠져나갔는데, 후원 대상은 △인터넷신문 미디어몽구(1만원) △통일뉴스후원(1만원) △김복동의 희망(5만원) 등 3곳이었다. 농협은행 통장엔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억 9,500만원의 돈이 들어왔지만, 같은 기간 2억 8,800만원이 빠져나가 올해 6월 기준 잔액은 660만원 정도였다.

국민은행 통장에서도 지원금 입금 직후 누군가 곧바로 현금 출금해 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올해 3월 길 할머니 국민은행 통장 내역을 보면, 3월13일 서울시에서 155만 9,000원이 지원금으로 입금됐는데, 나흘 뒤인 17일 전액 현금출금됐다. 현금이 출금된 곳은 마포구 성산동 지점인데, 바로 마포쉼터 근처에 있는 지점이다. 국민은행 통장에선 108번에 걸쳐 1억1,1400만원이 출금됐는데, 이 중 3번은 마포쉼터 관계자의 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길 할머니가 2017년 국민성금으로 받은 1억원도 통장에 들어온 지 1시간여 만에 500만원, 5,000만원, 2,000만원, 2,500만원 순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00만원은 현금으로 출금됐고, 나머지 9,500만원은 계좌이체됐다.

최근 검찰은 정의연 전 이사장이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준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윤 의원이 마포쉼터 소장 손모씨와 공모해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길 할머니를 이용, 정의연 등에 총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도록 유도했다는 게 검찰의 의심이다. 하지만 검찰은 윤 의원에게 준사기 혐의를 적용하면서 길 할머니 통장에서 정부 지원금이 현금 출금된 부분은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길 할머니의 며느리 조모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이 계좌이체된 부분만 혐의로 넣은걸로 아는데, 현금으로 (정의연이) 가져간 것도 상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통장에 들어온 돈을 곧바로 현금으로 찾아가는 건 요즘 거래 형태에 비춰보면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라며 "특히 현금으로 가져가면 이후 돈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더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장에서 빠져나간 현금 규모가 큰 만큼 검찰 수사를 통해 누가 어떤 용도로 돈을 인출해 갔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 할머니 통장에서 돈이 빠진 부분이 기소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그 부분도 확인은 했지만, 검찰이 입증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기소를 했다"고 밝혔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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