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민주당 초선들...'정치' 바꾸랬더니 '정권 사수'만

입력
2020.09.20 14:00


21대 국회의 '신입' 의원은 151명이다. 절반 이상인 82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유권자들은 정치 쇄신의 바람을 담아 새 얼굴들에게 ‘배지’를 달아줬다.

하지만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여당 초선 의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장혜영,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발언으로 존재감을 내뿜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민주당 초선 의원이 주목받는 건 주로 말 실수나 돌출 발언 때문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집권여당 소속이라는 '힘'과 정치 개혁 열망이라는 '명분'을 모두 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뭘까.

민심보단 ‘문심 바라기’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시선은 대체로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의 동향에 쏠려 있다. 그래서 자주 '정권 사수대'를 자처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방어에 적극 나선 여당 의원 중에도 초선 비율이 높다. 원내대변인인 박성준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빗대는 대형 사고를 쳤다. 16일 논평에서 "추 장관 아들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안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고 주장했다가 사과했다.

김남국 의원은 '국민의힘에 군대를 안 다녀오신 분들이 많아서 추 의원 의혹 잘 모르고 제기한다'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나 '팩트'가 틀렸다. 국민의힘이 공개한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중 군 미필자는 민주당 34명, 국민의힘 12명이다.

김 의원은 지난 7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난타당할 당시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여기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매)가 가로막혀 분노하는 집 없는 청년층의 민심에 불을 질렀고, 결국 한 발 물러섰다.


새 정치는 어디에... ‘정쟁’ 답습

민심은 초선 의원들에게 정치의 ‘고인물, 썩은 물’을 걷어내길 기대한다. 류호정ㆍ장혜영 의원이 주목 받는 건 국회의 관행에 도전하는 용감한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정쟁의 관행부터 너무 빨리 배운 듯하다.

장경태 의원은 지난달 “개소리” 발언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혁신 라이브’ 유튜브 방송에 출연,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을 겨냥해 “(다른 당 법사위원들이) 개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지”라고 비꼬았다. 국민의 힘이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발끈하자, 장 의원은 사과했다. 해당 영상은 삭제됐다.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전광훈 목사와 국민의힘을 한 데 묶고, 최재형 감사원장 가족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는 정쟁적 질의로 입길에 올랐다.

TPO 못 맞춰 헛스윙 된 소신 발언

발언과 어울리는 시간ㆍ장소ㆍ상황(TPO)를 고르지 못한 실수도 잦았다. 문정복 의원은 7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이 간사로 추대한 이헌승 의원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 강남 집값으로 시세 차익을 거둔 사람을 간사로 인정할 수 없다"며 표결로 간사를 뽑자고 주장했다. 상임위 간사는 스포츠팀으로 주장 격이다. 상대 팀 주장까지 '수의 힘'으로 뽑겠다는 뜻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진선미 국토위원장이 “통상적, 관행적으로 간사 선임은 각 당에 맡기게 돼 있다”고 일러 주고서야 문 의원은 물러났다.

이소영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입법부를 장악했다'고 주장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문제는 'TPO'가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장이었다는 것.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대정부질문의 취지를 이 의원은 숙지하지 못한 듯했다. 이번에도 민주당 소속인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나서서 “대정부 질의에 맞는 적합한 질의를 해주면 좋겠다”고 두 번 주의를 줬다.


과녁 자꾸 빗맞추는 이유는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의 후광을 누리고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열성 지지층은 여권 내 '다른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20대 국회 초선이었던 금태섭 전 의원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초선 의원들이 다른 목소리 내기를 주저한다면, 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느라 실수를 연발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시들고 말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민주당에도 눈에 띄는 초선 의원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여전히 과거의 관행이나 문법으로 얘기하는 일부 초선 의원들만 화제가 되고, 그들 때문에 국민에게 자꾸 비호감을 사는 것이 당 전체에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아쉬워했다.

국무총리 시절 '내각 군기반장'으로 불린 이낙연 대표도 당 사정을 '엄중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얼마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의원들의 눈빛과 언동이 더 진중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를 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한 사실상 경고 메시지였다. 이 대표의 진단대로, 국민은 초선 의원들의 날카롭되 정치적 선의로 빛나는 눈빛, 명확하되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언동을 기대하고 있다.

양진하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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