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눈앞이 흐릿하다. 도리어 가짜가 진짜를 위협하고, 기자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불린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짜'와 '언론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언론학자 김영희가 쓰고 출판사 나녹이 지난달 펴낸 '언론인 안깡 안병찬'은 그 혼돈 속에 다소간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30여년 언론계에 몸담아 온 안병찬의 궤적에서 길어올린 철저한 현장주의와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이 그것이다. 두 사람을 15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언론인 안병찬인가. 김영희는 "한국 현대 언론인 가운데 평생 동안 치열하게 현장주의를 실천한 대표적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안병찬을 소개하는 작업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를 지낸 그는 한국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언론이 가야할 길을 모색해온 학자다.
"철저한 현장주의로 기자 정신을 실천한 언론인." 김영희는 안병찬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한다. 안병찬은 전설의 사건 기자다. 1962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25년 넘게 일하면서, 악착같이 취재하는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칼에 찔려 사망한 시신의 칼자국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깊이를 확인했다는 사실무근 소문이 나돌 정도로 집요했다. 평생을 따라붙은 '안깡'이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깡다구'에서 따온 깡이다. 김영희는 "기자로서 현장을 강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언론인 안병찬의 취재 자세는 언론인이 되려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기레기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안병찬은 "요즘만 기레기가 있는 건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그가 기자 생활을 할 때는 촌지 문화가 있었다. 촌지 문화는 제2공화국이 들어서고 신문ㆍ잡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기자들이 공갈 협박으로 뜯어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 데서 비롯했다. 기자들이 둘러앉아 포커를 치는 모습은 당시 흔한 기자실 풍경이었다. 그는 세 차례 촌지 문화 배척과 기자실ㆍ기자단 철폐 운동을 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1960~70년대에는 정권 비판에 입닫은 언론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다. 김영희는 "과거엔 신문이나 TV 등으로 정보를 접할 매체가 한정돼 있었다면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수용자인 독자들이 비판적 안목도 더 갖게 되고, 너무 잘 알게 됐다"며 "그만큼 팩트와 가짜뉴스에 대한 불신 역시 예전보다 더 대중적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찬의 저널리즘론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펜을 쥐고 있던 동안 결코 놓지 않았던 현장과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으로 말이다. 그는 "결국 내가 귀결한 것은 춘추필법(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엄정하게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과 실사구시(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 두 용어로 집약된다"고 강조했다.
안병찬은 훗날 '필드'를 떠나 논설위원 시절 칼럼을 쓸 때도 현장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 추적 취재법'이라는 자신만의 취재기법을 만들어냈다. 일례로 1980년 취재한 강원도 산골 마을을 1986년과 1999년, 2007년 다시 찾아 27년에 걸친 마을의 변천사를 기록했다.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건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이다. 단편적 보도가 아닌 기록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심층 취재 보도를 말한다. 김영희는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을 제대로 실현한 사례로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꼽는다. 안병찬이 마지막까지 1975년 남베트남 멸망의 현장에 남아 기록한 최후의 순간을 모은 저작이다. 그는 "평소엔 개도 무서워할 정도로 겁이 많은 사람"이라며 "안병찬의 쓸모를 알고 십분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선배들 덕분이었다"고 영광을 돌렸다.
안병찬은 지금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매일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건물에 마련된 집필실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10년마다 '이 다음에 뭐하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사건기자로 물불 안 가리고 취재하다 원치 않던 외신부에 발령이 났을 때는 홍콩 연수를 가고,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통이 됐다. 이렇게 10년마다 또 벽에 부딪히면 대상을 옮기고 재적응하며 새 활로를 열었다. 언론인도 10년에 한번씩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