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경찰 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이른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ㆍBLM)’ 운동을 바라보는 미국사회의 시선은 다소 싸늘해졌다. 운동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지만 약탈과 폭력 사태 등 시위의 부정적 측면이 노출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보수 언론이 이를 정치 쟁점으로 부각하면서 연대의식의 농도가 옅어진 것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6일(현지시간) 미 비영리 연구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미 성인 중 ‘BLM 시위를 강하게 또는 어느 정도 지지한다’는 응답이 55%라고 전했다. 6월 조사에서 지지도가 67%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에 열기가 급격히 식은 셈이다.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적극 지지하는 응답도 38%에서 29%로 감소했다.
특히 백인 공화당원들의 변심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37%에서 16%로 시위 지지도가 급락해 감소폭이 가장 큰 그룹으로 나타났다. 백인 민주당원의 지지도 변화(92→88%)가 미미한 점과 비교하면 당파적 분열이 더욱 가속화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퓨리서치센터 측은 “최근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반목이 확대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경찰 과잉진압에 맞서 시위대의 폭력 수위도 높아지면서 BLM 운동에 대한 인종적ㆍ이념적 분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13일에는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관 2명이 괴한의 기습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는데도, 일부 시위대가 응급실 출입구를 막고 악담을 퍼붓는 등 BLM의 대의가 훼손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미디어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인종차별 시위를 선거판에 적극 끌어들인 것도 갈등을 증폭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바다주 유세에서 “경찰관을 살해하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시위대를 폭도로 몰아갔다. 또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군을 투입해 시위대를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보수 매체의 대표격인 폭스뉴스 역시 시위대의 폭동과 약탈을 집중 방송하는 등 자극적 보도를 이어가며 편 가르기를 독려했다.
그러나 테러, 시위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다국적 단체 ‘ACLED’가 5~8월 미 전역에서 발생한 7,750건 이상의 BLM 시위를 분석한 결과, 93%는 평화 집회였다. ACLED 측은 “시위대가 폭력적이라는 믿음은 정치적 편견 씌우기와 불균형적인 보도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단언했다. 일부 세력의 정치적이고 인위적인 분열 시도가 미국사회의 오랜 악습인 인종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