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째 재택근무 중인 정모(30)씨는 최근 팀원들과 진행한 화상 회의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카메라를 켜고 회의 준비를 끝내자 마자, 팀장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씻기는 했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정씨가 당황하는 모습을 팀원이 모두 지켜봤고, 팀장은 이후로도 한두명을 향해 같은 농담을 던졌다. 정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외출할 일이 드물어 화장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농담이라도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재택이 길어지다보니 상사들의 잔소리가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노노 간, 노사 간 갈등이 조금씩 늘고 있다. 사측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일부 직원들의 업무 태만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근로자는 온라인 감시와 초과 근무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불편을 토로하는 것은 '온라인 감시' 시스템이다. 메신저 접속 표시나 메시지 답장 여부 등으로 수시로 근무 중인지를 확인하는 회사와 임원들이 적지 않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29)씨는 "회사 메신저는 접속한 사람 프로필에 초록색 마크가 뜨도록 설계돼 있는데,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마다 접속 여부로 간접적인 근무체크를 당한다"며 "점심 자리가 조금 늦어질 것 같으면 아예 노트북을 들고 나가 켜놓고 식사를 한다"고 털어놨다.
상시로 켜놓을 수 있는 화상카메라를 설치할 것을 요구 받는 이들도 있다. 대구의 한 콜센터에서 일하는 박모씨는 "우리 회사를 포함해 전국 몇몇 콜센터들이 화상카메라를 상시로 켜두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며 "통화기록 등으로 업무 현황이 충분히 파악되는데 화가 난다"고 전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재택근무 매뉴얼에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위치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담기면서, 근로자들은 '사측이 요구하면 어떻게 거부하느냐'며 반발이 거세다.
근로자들은 업무시간을 넘어서는 지시도 재택근무의 부작용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고용부와 취업정보제공 사이트 '잡플래닛'이 지난달 근로자 878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활용실태 설문조사'(복수응답)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5.8%가 재택근무 시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모호'를 가장 우려되는 지점으로 꼽았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유미현(28ㆍ가명)씨는 "원래는 오전 9시부터 6시까지가 근무 시간인데 재택근무라는 핑계로 오전 8시부터 저녁까지 업무 관련 카톡이 오곤 한다"고 했다.
많이 사라졌던 사생활 간섭 문제도 재택근무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지난 7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30명 중 14.2%가 회상회의 시 외모 및 복장 지적, 성희롱 등을 경험했다. 최모(29)씨는 "화상카메라로 비춰진 방 모습을 슬쩍 보고 '옷이 너무 많아 행거가 쏟아질 것 같다'며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측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근무와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사원들의 해이를 막을 길이 없어서다. 온라인 광고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30)씨는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거래처의 전화를 계속 안 받아 거래처에서 황당해하며 직접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인 신모(58)씨도 "부팀장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원들이 친구에게 보낼 문자나 유튜브 링크 등을 팀방에 전송하는 '메신저 실수'가 늘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점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재택근무 관련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부에서 매뉴얼을 냈지만 혼란은 여전한 듯 보인다"며 "근무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지침은 만들되 위치추적, 화상카메라 상시 작동 등 인권 침해적 내용은 포함시켜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