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실소유주로 있는 이스타항공이 직원들에게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민주당 중진급 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기부를 강요한 정황이 직원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스타항공의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이상직 의원의 책임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 의원이 직원들을 자기 정치에 동원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이스타항공 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5월 500여명의 직원이 포함된 단체 채팅방에서 정치후원금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정치후원금을 요구 받은 적이 있느냐' 질문에 응답자(104명)의 46%(48명)가 “있다”고 답했다. 후원금을 요구 받은 직원 가운데 사측의 압박에 못 이겨 2012~2019년 후원금을 실제로 냈다고 응답한 직원은 32명이었고, 요구를 거부한 직원은 16명이었다. 후원금을 냈지만 응답을 안 한 직원들까지 감안하면, 실제로 후원금을 낸 직원들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후원금 기부 강요가 인사고과와 연결된 탓에 거부하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미입금자 명단을 파악해 끝까지 후원하도록 강요한 부서도 있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설문 응답자들은 ‘권유가 아닌 강요로 느낀 이유’에 대해 “진급을 앞두고 고과에 반영된다고 했다” “진급 대상자임을 강조하며 기부를 하라고 했다” “입사 초기라 상급자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후원을 강요 받은 인물로는 이상직 의원(10명)이 가장 많았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8명)가 두번째였다. 민홍철ㆍ박찬대 의원, 이훈 전 의원에게 후원금을 냈다는 직원도 있었다.
직원들은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사측이 지목해준 의원에게 후원금을 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 직원은 “팀별, 직원별로 후원해야 하는 정치인이 달랐다”며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쪽지에 후원해야 할 정치인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적어 나눠줬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팀장이 네이버에서 국회의원 김태년을 찾으면 계좌번호가 있으니 기부금을 내달라 했다”고도 언급했다.
노조는 사측의 후원금 강요가 실소유주인 이상직 의원의 정치활동과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직원들은 사내에서 “이상직이 국회에 가야 회사가 더 발전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노조위원장은 “설문을 통해 사측이 민주당 중진 의원에게 정치 후원금을 몰아준 정황이 포착됐다”며 “결국 이상직 의원이 이들에게 잘 보여서 공천을 받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상직의 정치’에 직원들이 이용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스타항공 핵심 간부와 김태년 의원은 순천고 동문 사이"이라며 "김태년 의원에 대한 기부가 이상직 의원 다음으로 많았던 데에는 이런 인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이상직 의원과 회사 경영진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정치자금법 제33조는 '누구든지 업무ㆍ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름이 거론된 민주당 의원들은 후원금과 관련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본보는 이상직 의원과 김태년 의원에게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상직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고 했고, 김태년 의원 측은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후원금 기부를 강요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강요한 게 맞다면 강요한 사람에게 물어야지 저희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민홍철, 박찬대 의원과 이훈 전 의원도 몰랐다는 반응이다. 박찬대 의원은 "이상직 의원과는 의원 선배들 소개를 받아 아는 정도"라며 "후원금 문제에 대해선 특별히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노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김태년 의원 등 민주당 중진의원 후원을 직원들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며 "당시는 정치후원금을 권장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상직 의원에 대해서도 소액기부를 하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직원들에게 설명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