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라는 듯 중국을 옥죄는 주요 수단으로 대만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17일엔 '화웨이 저격수'로 통하는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이 대만을 찾았다. 중국은 이번에도 발끈했지만 미국의 잇따른 압박 카드에 '하나의 중국' 원칙은 갈수록 휘청거리는 듯한 상황이다.
크라크 차관은 19일까지 대만에 머물며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비롯한 정ㆍ재계 인사들과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1979년 미국과 대만의 단교 이후 국무부 인사로는 최고위급 방문이자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전례 없이 두 달 연속 미 고위 관료가 대만을 찾은 것이다. 위엔정(袁征)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껏해야 차관보급을 보내던 미국이 갑작스레 대표단의 '격'을 높인 건 심각한 도발"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F-16V전투기, 패트리엇미사일(PAC-3)에 이어 다른 무기의 판매에도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6일(현지시간) "대만이 지뢰와 순항미사일, 드론 등 7종의 무기시스템을 들여올 것"이라고 전했다.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대만과의 무기 거래 규모는 133억달러(약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군사ㆍ외교ㆍ경제분야로 전선을 넓혀가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들고 있다. 카드를 순차적으로 꺼내 상대를 괴롭히는 '살라미 전술'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대만과 연합군사훈련을 정례화하거나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인정한다면 중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게 된다.
대만은 여세를 몰아 종지부를 찍을 심산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경제적으로 중국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목표다. 차이 총통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2006년 이후 14년만에 가축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함유된 미국산 소고기ㆍ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선물'을 안긴 이유다. 미국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의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크라크 차관은 '경제번영 네트워크'를 주도하며 중국에 맞선 경제블록 실현에 앞장서 왔다. 19일엔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이자 차이 총통의 후견인이었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크라크 차관이 미 무역대표부(USTR) 소속이 아니라 이번 방문기간 FTA 논의가 진전되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 대만은 근래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도 상당히 고무돼 있다. 지난 1일 체코 상원의장 일행 방문에 이어 내년 초엔 전직 덴마크 총리와 스웨덴 통상장관의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전직 덴마크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어 양측 간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스웨덴은 중국의 첫 서방권 수교국이지만 지난 4월 서방권의 '공자학원' 폐쇄를 주도함으로써 중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중국은 "대만이 미국의 꼭두각시를 자처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과의 관계 증진은 독약을 마셔 갈증을 풀려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대만해협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은 특히 "민진당 분리 세력이 모두를 불행에 빠뜨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성향의 차이잉원 정부와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의도다. 미국이 중국 인민들이 아닌 공산당을 겨냥해 몰아세우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대만 국방부는 "전날 중국 대잠초계기 2대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 보건장관이 방문할 때도 중국은 전투기 20여대를 대만과의 중간선 너머로 출격시키며 긴장을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