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극우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극우파가 주축이 된 ‘노 마스크’ 시위대가 잇따라 수도 베를린 거리를 뒤덮은 데 이어 일부 경찰관들이 극우 채팅방을 열고 나치 상징인 스와스티카 문양 등을 주고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7월에는 최정예 특수부대가 극우파 대원들의 존재로 해산되는 등 극우주의가 공권력으로까지 번지면서 독일 당국은 극우 극단주의 부상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경찰관 29명이 채팅 애플리케이션 왓츠앱에서 조작된 난민 가스실 및 흑인 총격 사진 등 신(新)나치주의 이미지 126개를 주고 받은 것이 드러나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중 14명은 해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주정부는 “주의 5만 경찰력이 순수한 민주주의자”라며 이번 사건을 개인 일탈로 치부했지만 독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극우 세력에 맞서야 할 경찰이 되레 외국인 혐오적이고 과격한 콘텐츠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7월에는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 극단주의를 신봉하는 대원들이 다수 속한 정예 특수부대 KSK를 부분 해산했다. 이번에 적발된 경찰들의 채팅방도 최초 개설 시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보수당의 국가안보 전문가인 크리스토스 카치디스는 “우리의 가치를 보호하고 방어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를 걷어차고 있다는 게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독일 극우주의는 2015년 독일 정부가 중동ㆍ아프리카발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이를 지렛대 삼은 극우 성향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부상과 맞물려 본격화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 등이 중첩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난달 30일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일부 시위대가 베를린 연방의회 건물 진입을 시도하는 등 과격한 행보를 보이는 극우 극단주의자들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AfD가 난민 위기를 이용했듯,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민주시민사회연구소의 극우주의 전문가인 마티아스 퀀트 소장은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은 설 자리를 잃고 현 정부에 대한 신뢰가 증가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극우 세력이 팬데믹을 이용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실업률이 증가할 경우 이런 방정식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를린 사회과학센터의 스웬 허터 박사도 “이들은 사회에서 광범위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 위기로 인한 독일의 경제ㆍ사회적 위기가 부각될수록 불만 표출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극우 음모론 주류화의 불씨를 댕기는 등 허위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것도 독일 극우 부상의 한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 최근 코로나19 통제 반대 시위자 일부가 미 대사관에 몰려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카밀라 리야네게 영국 급진우파분석센터(CARR) 연구원은 “극우 생태계에는 국경이 없다”며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극우주의가) 어디에나 잘 맞을 수 있다”고 촌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