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의대 본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시 ‘해부학 교실’로 등단했다. 다음해인 1960년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냈다. 시인이자 의사로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듯 했다. 하지만 박정희정권이 1965년 한일회담 반대에 서명한 문인들에 대해 대대적 탄압에 나서면서 인생 행로가 꼬여버렸다. 내쫓기듯 미국으로 향해 “밤낮없이 일해서 빚을 갚고/돌아가지 못할 나라를 원망하면서/남아 있던 외로운 청춘을 팔아야”(‘이슬의 명예’ 일부) 했다.
최근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을 내놓은 마종기 시인이다. 마 시인은 시력 60년을 이 한 권이 시집에다 압축했다. 낯선 땅에서 샘솟은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긍지, 세상을 먼저 떠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회한,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 신앙과 사랑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2002년 의사 은퇴 뒤 매년 한국을 찾았던 마 시인이지만, 올해엔 코로나19로 그마저 무산됐다. 먼 타국에서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왔다.
"언제 그런 세월이 지났나 싶어 부끄럽습니다. 제 팔자가 기구해 외국에 나와 오래 살고 있지만 그나마 시를 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플로리다주는 한국인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라 한 달을 가도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는 한 저는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외롭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명제를 제가 이해해서인지도 모르죠."
"이번 시집의 특징 중 하나가 신앙심에 대한 자기노출입니다. 이전에는 문학과 신앙이 가까이 만나는 것을 꺼려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창궐하고 죽음이 이웃같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유희인 시에 신앙의 거룩함을 칠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정직해보고 싶었습니다."
"문학은 결국 죽음에 대한 성찰이고 공포고 찬미고 대화라고 합니다. 저자가 젊든 늙든 문학은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 자신의 마지막에 대한 예감은 없습니다. 생업이 의사였기 때문에 20대부터 60대까지 많은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담담한 편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역병을 보며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우리 생에 대한 자세와 화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과 기회를 가졌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비록 외국에 있는 의사였지만, 이번 사태에 특히나 고국의 의사들이 목숨을 걸고 직분을 수행하는 것을 보며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우리 의료인들의 사명감에 감동해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학이, 시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끝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 다음에 오는 것, 죽음의 뒷면입니다. 그것이 쉽게는 신앙이겠으나, 저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시로써 아름답고 환하게 보여줄 재주가 없어 자꾸 신앙에 대해 얘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메멘토 모리’, 그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일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