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인터넷에 떠도는 비교 사례가 하나 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키우면서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은 거의 없는 중산층 4인 가정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초등학생까지 대상이 확대된 돌봄지원금(1인당 20만원)과 13세 이상 통신비 지원(1인당 2만원)을 합쳐 총 44만원을 받게 된다. 반면 중위소득 75%를 간신히 넘긴 4인 가정의 경우(※긴급 생계자금은 중위소득 75% 이하 가구에만 지원됨) 두 자녀가 모두 중학생이라면 통신비 지원 8만원이 전부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정에는 8만원밖에 안 돌아가는 반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는 5배 많은 44만원이 돌아가는 셈이다. 초등학생 돌봄지원금(5,600억원), 통신비 지원(9,300억원)처럼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심성 지원이 끼어드는 바람에 이 같은 역설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 등 취약계층을 두껍게 지원하겠다던 약속이 후퇴했다.
당초 정부가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이재명 경기지사)는 반발에도 '선별 지원' 원칙을 정한 것은 피해가 집중된 업종과 계층에 맞춤형 지원을 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또 코로나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선별 지원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다 당청의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서 전 국민 선심 대책으로 변질됐다. 심지어 통신비 지원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건의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찬성하면서 하루 만에 전 국민 지급안으로 바뀌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위로이자 정성”이라는 설명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했다. 위로는커녕 주고도 욕 먹을 수 있다는 우려만 남겼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연대와 공존의 정신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런 미담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위기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는 언제 끝날지 모르고 재정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은 국민의 돈을 갖고 정부가 선심을 써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예산 집행에 어느 때보다 확고한 원칙과 철학을 보여야 할 때다.
재난의 고통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코로나 재난의 최대 피해자는 이번에 맞춤형 선별 지원하기로 한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 등이다. 한때 이태원 거리 부활을 이끈 홍석천도 일매출 1,000만원을 찍던 가게에서 고작 3만 5,000원밖에 못 벌자 두 손 들고 이태원을 떠난다고 했다. 홍석천이 이 정도면 이름 없는 중소 상인의 상황은 더 열악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가는 지원금이 한 달치 임대료도 안 되는 100만~200만원에 불과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비유대로 두꺼워야 할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 얇고, 여론 무마용 통신비 지원은 너무 얄팍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분명한 철학이다. 지금처럼 선별과 보편 원칙이 뒤죽박죽 될 바엔 차라리 1차 때처럼 전 국민 지원을 밀어붙이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벌써부터 통신비 2만원 문제는 4차 추경의 복병이 될 조짐이다. 민주당이 ‘무선통신도 방역 필수재’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 건 유력 대선 주자가 건의하고 대통령이 수용한 정책을 여당이 어떻게 뒤집겠냐는 정서 때문일 것이다. 통신비 대신 무료 와이파이 확충, 전 국민 독감무료 접종, 고용안정자금 확충 같은 대안도 결국 9,300억원을 어디에 쓸지에 대한 고민일 뿐, ‘어떻게 하면 재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 질문은 피해 간다. 생계 걱정으로 하루하루 가슴이 타 들어가는 재난 피해자 앞에서 어설픈 포퓰리즘 때문에 갈팡질팡하는 게 지금 여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