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ㆍ바레인 간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중재로 백악관에서 체결됐다. 이스라엘이 아랍권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994년 요르단 이후 26년 만이다. 협정 체결에 주요 역할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외교 분야에서 점수를 땄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갈등 중인 팔레스타인이 강하게 반발하고 미국 및 이슬람 수니파의 숙적 이란이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 상황이다. 중동평화를 위한 전기가 마련됐지만 갈 길은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다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외무장관,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 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과 협정 서명식을 진행했다. 서명식에선 이스라엘과 UAE, 이스라엘과 바레인, 3국 간 협정이 각각 체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증인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해 서명했다. 협정 이름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따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후 연설에서 “수십년 분열과 갈등 이후 우리는 새로운 중동의 여명을 맞이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러한 평화는 결국 다른 아랍국가들로 확장될 것이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번 협정에 따라 3국은 대사관 개설, 관광ㆍ기술ㆍ에너지를 포함한 외교ㆍ경제 협력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공통의 적인 이슬람 시아파 이란을 상대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걸프만 수니파 왕정국가 사이에 사실상 동맹을 형성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UAE와 바레인의 경우 이스라엘과 직접 중동전쟁을 치르지 않아 이번 합의가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로 5,6개 국가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NYT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오만 등이 후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에 판매한 무기를 다른 중동국가에도 판매할 의향이 있다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F-35 스텔스전투기의 UAE 판매도 거론됐다.
이번 외교 이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득표 전략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친(親)이스라엘 기독교복음주의 유권자들의 지지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NYT는 “주요 방송사에서 생중계된 이벤트는 50일도 남지 않은 투표에서 트럼프에게 정치적 이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의 대표적 반(反)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이 “대통령과 행정부에 박수를 보낸다”는 성명을 냈을 정도다. 부패 혐의로 실각 위기에 몰렸던 네타냐후 총리 역시 국내 정치에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러나 중동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서명식이 진행되는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포에 이스라엘 주민 2명이 다쳤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협정 항의 차원에서 벌인 일이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성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에겐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며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만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른 약점도 여럿이다. 이번 합의를 위해 이스라엘은 UAE에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지 합병을 보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이라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미국 및 협정 참여국과 대립 중인 이란을 포위하려는 이번 합의에 이란이 어떻게 반발할지도 관심이다. 미국 안에서도 F-35의 UAE 판매를 두고 민주당이 수용 불가 입장을 보여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WP는 “한 장짜리 아브라함 협정 설명문에는 (서안지구) 합병이나 무기 판매 내용이 없고, 이스라엘과 UAE 간 협정에도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행사만 거창했지 실제 합의 내용은 추상적이고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