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출생신고 된 이름을 보면, 1940년대 가장 많았던 여자 이름은 영자, 정자, 순자, 춘자 순이다. 일제 시대 창씨개명으로 에이코(英子), 마사코(正子), 준코(順子), 하루코(春子) 같은 일본식 이름을 지은 뒤 한국식으로 바꿔 부르며 생긴 일이다. 그 시대 수많은 ‘-자’들은 대충 지어진 이름만큼이나 비슷한 정도로 희생했고, 고생했고, 나이 들어갔다.
멀리서는 엇비슷해 보이는 ‘-자’들의 삶도 가까이 다가가 묻고, 듣고, 불러보면 저마다 하나씩의 봉우리들이다. 황정은의 신작 소설 ‘연년세세’는 이 봉우리들을 유심히 보고 듣고 그려내 기록한 책이다. 지난해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에 이어 일년 반 만의 작품이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주제를 풀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단편 ‘파묘破墓’와 ‘하고 싶은 말’ 두 편에다 미발표작 ‘무명無名’, ‘다가오는 것들’ 두 편을 하나의 연작으로 엮었다.
작가는 “사는 동안 순자,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밝혀뒀다. ‘무명無名’은 작가가 만난 1946년생 순자씨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다. ‘무명無名’은 순자씨의 두 딸인 한영진과 한세진을 주인공으로 한 나머지 소설들로 연결된다.
사실 순자씨 이름은 순자가 아니다. 남편 호적에 입적하기 위해 본적을 확인하기 전까지 자기가 순자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실제 '이순일'이었다. 모두가 순자라 불렀으니 그런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인민군 치하에서 마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실종된 아버지, 전염병에 걸려 숨진 어머니, 북으로 넘어간 백부, 피난 갈 기운이 없어 고향에 남은 외조부, 그를 식모로 부리던 고모와 고모부까지. 모두가 이순일을 순자라 불렀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순자라 불렸기에, 작가는 소설에서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이순일'이라 부른다. 이순일 뿐만이 아니다. 황정은은 소설에서 이름을 줄이거나 인칭대명사로 대체하지 않는다. 이순인을 끝까지 이순일이고, 한영진과 한세진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영진과 한세진이다. 그 동생인 한만수, 그 아버지인 한중언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것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않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마지막 단편 ‘다가오는 것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뉴욕에 출장간 한세진은 그곳에서 이모할머니, 즉 이순일의 이모인 윤부경의 손녀 제이미를 만난다. 윤부경은 거제도로 피란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노먼을 낳았고 노먼은 다시 제이미를 낳았다.
노먼은 어린 시절 자기 어머니를 ‘양갈보’ ‘양색시’라 부른 한인들을 용서할 수 없어 한인들의 언어인 한국어를 경멸했고 평생 한국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미는 “자기 모어를 경멸 속에 내버려둔” 노먼의 선택이 오히려 그 한인들에 대한 “강한 동조였다”고 말한다.
한세진은 제이미와 함께 9ㆍ11테러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을 청동 패널에 음각으로 새겨둔 추모 기념 공원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한세진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생명안전공원이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납골당이 아니라 안산을 명품도시로 거듭나게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해야만 했던 일을 함께 떠올린다.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말도.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이라 부르지 않고, 윤부경을 양색시라 부르지 않고, 이순일을 순자라 부르지 않는 일. 누구의 무엇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않겠다는 건 곧 그 사람을, 그 대상을 제대로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다. 무명씨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려 꺼내 보이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제대로 불러보는 일. 그렇게 그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 세상이 미처 다 못하는 일을 황정은의 소설은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