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불사하며 밀어붙인 ‘국내시장법’이 입법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지난해 타결된 브렉시트 협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내용이라 EU와의 미래관계 협상을 좌초시키는 등 준비 없는 이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당 안에서조차 “외교적 실수”라는 비판과 함께 반발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국내시장법은 이날 영국 하원에서 5시간 토론 끝에 실시된 제2독회 표결을 찬성 340표, 반대 263표로 통과했다. 반면 국내시장법을 전면 거부하는 내용의 노동당 수정안은 찬성 213표, 반대 349표로 부결됐다. 영국의 법안 심사는 3독회제가 기본이라 하원을 최종 통과하려면 한 차례 더 표 대결을 해야 한다. 이후 상원을 거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얻으면 정식 효력이 발생한다.
국내시장법은 공개 직후부터 논란이 됐다. 핵심은 영국과 EU가 당초 예정된 연말까지 미래관계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면 영국 정부가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간 물류 관련 탈퇴협정 조항을 자의적으로 수정하거나 적용하지 않는 권한을 갖도록 규정한 내용이다. 당연히 국제조약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EU는 강하게 반발했다.
탈퇴협정은 원래 북아일랜드가 EU 단일시장에 남아 EU 측 규제를 받도록 했다. 이럴 경우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 사이 교역 시 통관서류 작성 등의 제약이 생길 수 있어 영국 내에선 영토 보전성과 주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국내시장법은 탈퇴협정의 모호한 부분을 명확히 하고 영국 전체의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적 보호망이라는 게 영국 정부의 항변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하원 토론에 앞서 “영국은 탈퇴협정을 지킬 준비가 돼 있지만 EU가 영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상황은 용인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의 경계가 외국이나 국제기구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논란을 의식한 듯, “국내시장법은 일종의 보험”이라면서 “이런 조항들을 실제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수당이 하원 과반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일단 법안 통과가 유력하지만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BBC는 지적했다. 실제 다수의 보수당 의원들과 영국 전직 총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존 메이저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전날 선데이타임스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영국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국내시장법은 EU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국가와의 무역협상마저 어렵게 한다”면서 폐기를 촉구했다. 테리사 메이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제프리 콕스 하원의원도 “영국의 국제사회 명성에 터무니없는 손상을 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U는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정면 대결을 예고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전날 트위터에 “영국의 EU 탈퇴협정은 완전히 이행돼야 한다. 이제 영국이 책임을 져야 할 때”라며 “영국의 서명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