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억 아끼려다 300억 날린 울릉 방파제, '알고 보니…'

입력
2020.09.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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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부서진 220m, 시공 직전 설계변경
울릉공항 활주로와 겹쳐 예산 아끼려 축소

태풍 마이삭에 파손된 경북 울릉항 동방파제 220m 구간이 시공 직전 설계 변경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향후 방파제 바깥쪽으로 울릉공항 활주로가 설치돼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인 만큼 ‘예산 절약’ 목적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아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복구비가 들게 됐다. 기와 한 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힌 셈이다.

15일 해양수산부 산하 포항지방해양수산청(포항해수청) 관계자는 "지난 2015년 보다 저렴한 비용이 드는 건설공법으로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며 "이번 태풍에 피해를 입은 구간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당초 방파제는 '50년 빈도' 파고인 10.3m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됐지만, 활주로와 나란히 바다로 뻗어 나가는 220m 구간만 '10년 빈도' 파고인 5.2m로 설계 변경됐다. 공사 발주처인 포항해수청 한 관계자는 "당시 설계 변경으로 90억원을 아꼈는데 복구에는 3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위치한 울릉항 동방파제는 지난 3일 태풍 마이삭이 몰고 온 강풍과 높은 파도에 총 길이 640m 가운데 220m 구간이 부서졌다. 당시 울릉도에는 순간최대풍속이 50㎧에 달하는 돌풍과 함께 기상관측 이래 최고 높이인 15.7m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동방파제는 국비 1,832억원이 투입돼 지난 2014년 2월 착공, 2018년 6월 준공했다. 사동리에 울릉공항 건설을 확정한 국토교통부가 동방파제 바깥쪽으로 나란히 활주로를 놓기로 하자 포항해수청은 이 부분과 겹치는 방파제 220m 구간 공사 규모를 줄였다.

공사 규모 축소는 공법 변경으로 이뤄졌다. 당초 동방파제 전 구간을 '케이슨 공법'으로 설계했지만, 220m 구간만 '사석경사제'로 변경했다. 속이 빈 사각 콘크리트 구조물(케이슨)을 통째로 바다에 가라앉히는 케이슨 공법은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 등을 바다에 투하하는 방식의 사석경사제보다 파랑에 강하다. 대신 제작과 해상 운반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 220m 구간을 사석경사제로 시공, 90억원이 절약됐다.

그러나 2020년 말 준공예정이던 울릉공항 건설공사가 착공조차 못하자 설계변경된 방파제는 태풍 마이삭이 몰고 온 강풍과 파도에 무너졌다. 포항해수청은 복구비용을 300억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포항해수청 관계자는 "울릉공항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여 예산절감 차원에서 설계를 바꿔 규모를 줄였다"며 "활주로 건설이 늦어진 데다 기록적인 강한 태풍으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설계 변경과 함께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방파제 건설 때 적용한 사석투하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설계에는 파이프를 연결해 사석을 밀어 넣는 폴파이프 공법으로 적용하기로 했지만, 사석을 해상 바지선에서 바로 투하했다. 당시 사동리 앞바다에 흙탕물이 일었고, 주민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사석을 투하해 차오르면 수면이 얕아져 폴파이프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직접 투하하게 된다"며 "사석을 바로 투하해도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검측한 다음 그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기 때문에 폴파이프 여부와 구조적 안정성에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울릉=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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