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신용대출 폭증, 리스크 관리 필요하다

입력
2020.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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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주택담보 대출을 규제하자 신용 대출이 폭증하는 ‘풍선효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0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총 125조4,172억원에 달했다. 8월 말 대출 잔액(124조2,747억원)에 비해 불과 8영업일 만에 1조1,425억원 급증했다. 이 추세라면 신용대출 증가 폭이 역대 최대였던 8월(4조755억원) 수준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뿐만 아니다. 저축은행·카드·보험 등 제 2금융권에서도 지난 6월 이래 증가폭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증가폭도 심상찮다. 금융권 전역에 걸쳐 가계 신용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저소득층 가구나 소상공·자영업자들의 경우, 생활 및 생업 유지를 위한 자금융통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저금리 속에 자산 가격 상승 기대감이 작동하면서 최대한 빚을 내서라도 주택과 주식에 투자하려는 ‘영끌 투자’ 수요다. 금융당국은 최근 증권 계좌 샘플, 규제지역 주택매매 자금 조달 계획서 등을 분석한 결과, 신용대출의 상당 비중이 주택 구입 자금이나 증시 투자 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규제책을 조만간 가동할 방침이다. 금리 부담이 사상 최저 수준인 만큼, 자금을 융통해 보다 수익성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걸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주택이든 증시든 안정적 추가 상승세를 낙관하는 건 무리다. 특히 2030의 ‘영끌 투자’가 적잖이 유입된 것으로 분석되는 증시 지수 수준은 이미 실물과의 괴리가 위험 수준에 달한 ‘거품 국면’이라는 경고가 만만찮다. 안 그래도 국제결제은행(BIS) 등은 13일 국내 가계빚이 GDP 대비 97.9%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경고를 냈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자산 가격 급락 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계 신용대출 관리에 들어가되, 생계형 대출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교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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