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참수설과 공포정치

입력
2020.09.1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올라선 북한 2인자였다. 하지만 김정은 권력 승계 2주년을 며칠 앞둔 2013년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비판 당한 뒤 끌려 나갔다. 장성택의 실각 장면은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히 방영됐다. 사실 장성택은 그보다 몇 달 전 이미 체포돼 감금 상태에 있었으나,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도로 끌려 나와 정치국 확대회의장에 앉아 있던 상황이었다.

□장성택에겐 반역죄가 적용됐지만 실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후계자로 민 괘씸죄였다. 나흘 뒤 장성택은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이 집행돼 사망했다. 당시 사형 방식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대표적인 게 장성택이 고사포(비행기 공격용 포)에 처형됐다는 루머다. 장성택이 굶겨 놓은 사냥개 120마리한테 물려 죽었다는 소문은 홍콩 타블로이드지 문회보(文匯報)에 실리기도 했다. 북한 관련 내용은 무조건 쓰고 보자는 관행의 결정판이었다.

□그런데 북미 정상 간 대화에서 처형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모든 걸 말해줬다”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김정은이 고모부를 죽였고 그 시신을 (북한의) 상원의원들이 걸어나가는 계단에 뒀다. 그리고 잘린 머리는 가슴 위에 놓아뒀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장성택 참수설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고사포 처형설도 황당하지만 참수설도 야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참수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처형 방법 중 하나지만 오늘날에는 잔혹성을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허용하지 않는다. 고모부를 참수하고 이복형을 암살하는 독재자와 반소매 내의만 걸친 채 수해 복구 현장을 누비는 북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둘 중 한쪽만 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염원은 허상이 되기 쉽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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