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의원은 M&A 위해 대통령 빼고 다 만났다"...노조측 녹취록 공개

입력
2020.09.14 18:04
5면
이스타항공 창업자만 강조하고 실소유주로서 책임 회피 비판
이스타항공 경영진 "이상직 소유 공개도 '특혜' 시비 가능 우려한 조치" 반박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 성사를 위해 정부 고위 인사들을 대거 접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국무총리부터 청와대 실장, 관계부처 장차관 등 관련 인사들이 모조리 포함됐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 6월 회사 경영진과 노조 관계자가 만나서 나눈 2시간 51분 분량의 대화 녹취록을 14일 공개했다. 이 의원측에서 이스타항공과 지주사인 이스타홀딩스에 대한 자녀들의 지분 등 모든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하기 직전 이뤄진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다.

녹취에 따르면 이스타항공 고위 인사는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될 경우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산업은행,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에서 부정적인 입장이다"며 "조용히하면 국민들은 이스타항공이 이 의원 것인지, 정부가 지원을 했는지 모를텐데, (노조가 이 의원의 소유주로서 책임 강조하면서) 양동이로 끌 수 있는 불을 소방차 부르려고 키워버렸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실질 소유주가 이 의원이라는 사실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M&A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녹취록엔 이 의원이 제주항공과의 M&A 성사 및 정부 지원을 위해 정세균 국무총리,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났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관계자는 "이 의원이 제주항공에서 어떻게든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게 하려고 국토부 장관도 만났고, 대통령 빼고 높은 사람은 다 만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 의원이 지금 움직여서 회사에 도움을 줘야 되는 상황이고, 회사를 살려내는게 목적이지 누구를 나쁜 사람 만들 필요가 없다"며 "(조종사 노조가)그렇게 투쟁하고 이 의원 나쁜 사람 만들어서 득될 것이 뭐가 있냐"고 강조했다.

녹취록 공개에 대해 회사측 경영진은 "노조 측에 당시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하고 자중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고위관계자는 "이 의원이 이스타항공 실소유주라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 향후 정부 지원을 받았을 때 야당이나 반대 세력으로부터 특혜 시비가 걸릴 수 있어 조용히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며 "지금처럼 계속 논란만 만들어 내면 현재 진행 중인 재매각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측에선 지난 11일 이 의원이 입장문을 통해 "(본인이) 이스타항공 창업자이기만 할 뿐, 소유주가 아닌 것 같은 태도를 보여서 이날 녹취를 공개한 것"이라고 전했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위원장은 "제주항공과의 M&A 무산도, 이스타항공 경영위기도 모두 이 의원이 관여된 것인데, 본인과 상관없다는 식의 3차 화법에 유치에달 화법을 쓰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부, 여당도 이 의원과 계속 만나면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매각 주관사를 선정한 뒤, 현재 사모펀드(PEF) 및 기업 4곳 등 총 10여곳과 인수를 논의 중이다. 이달 말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10월 중 M&A를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체불 임금 280억원을 비롯해 2000억원에 달하는 미지급금이 남아있는 데다 재운항을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한 탓에 업계에선 M&A 성사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한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의원에게 이스타항공 창업주이자 국회의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국민과 직원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며 "당은 이스타항공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류종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