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이끈 '칩인 이글'... 기적의 메이저퀸

입력
2020.09.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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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인스퍼레이션 대역전극으로 LPGA 통산 4승



흡사 마법 같았다. 이미림(30ㆍNH투자증권)이 웨지를 휘두르면, 공은 무언가에 홀린 듯 홀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 고비였던 18번홀에선 칩인 이글을 성공하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마침내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승부를 지켜본 이들처럼 그 역시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 이미림은 “’내가 미쳤구나’ 라는 생각만 든다”며 “어프로치가 잘 됐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미림이 미국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ANA인스퍼레이션을 제패했다. 자신의 첫 LPGA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이미림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 컨트리클럽(파72ㆍ6,763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 최종일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4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기록,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의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전날까지 선두를 달린 넬리 코다(22ㆍ미국)를 비롯해 브룩 헨더슨(23ㆍ캐나다)까지 3명이 공동 1위로 연장에 돌입했고, 18번홀에서 열린 1차 연장에서 이미림 홀로 버디를 잡아 우승 상금 46만5,000달러(약 5억5,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미국 프로야구 레전드 요기 베라 명언이 현실로 다가온 모습이었다. 마지막 홀까지 이미림의 우승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이날 경기에서 이미림은 칩샷으로 홀 아웃을 하는 장면을 세 번이나 연출했다. 먼저 6번홀(파4)에서 그린 주위에서 오르막 칩샷으로 버디를 낚은 이미림은 16번홀(파4)에서는 좀 더 긴 거리의 칩인 버디를 만들어냈다. 사실 이때까진 운이라고 해도 반박이 어려웠다. 온 그린을 못한 뒤 칩인 버디로 마무리한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감각이 결코 행운이 아니었단 건 18번홀에서 증명됐다. 18번홀(파5) 직전까지 선두였던 코다에게 2타 뒤처져 있던 이미림은,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벗어나면서 우승과 완전히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린 주변에서 시도된 어프로치 샷이 환상적이었다. 이미림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시도한 내리막 칩샷은 두 번 튀긴 후 깃대를 맞고 홀 안으로 들어가며 이글이 완성됐다. 코다와 15언더파로 동률이 됐고, 코다가 마지막 홀에서 파, 그에 한 타 차 뒤지던 헨더슨이 버디를 기록하며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먼저 18홀을 마친 이미림은 절친들과 통화하며 자신감을 얻으려 했다. 이번 대회에서 줄곧 선두를 지켜오던 코다는 연장 1차전에서 세 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뒤 약 6m 버디 퍼트까지 빗나가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약 2m 남짓한 헨더슨의 버디 퍼트가 왼쪽으로 빗나갔고, 그보다 조금 짧았던 이미림의 버디 퍼트는 홀에 들어가며 대역전극이 완성됐다. 경기 후 이미림은 “(한 라운드에)두 번 칩인을 한 적은 있는데, 세 번은 없는 것 같다”며 “연장전에서 아무 생각 없이 경기를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이미림은 2017년 3월 KIA 클래식 이후 3년 6개월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4승째를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했다. “(연장 돌입 전)친구들로부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있게 경기했다”며 눈물을 흘린 그는 이 대회 전통적인 우승 세리머니 ‘포피스 폰드’ 입수로 기쁨을 만끽했다. 다만 멀리 풍덩 뛰어든 캐디와 달리 호수 바로 앞에서 ‘퐁당’ 들어간 이미림은 “물이 깊어 보여서 조심스럽게 뛰어들었다”며 웃었다.

이미림의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은 한국 선수가 10년 연속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오른 기록을 완성했단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그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2부 투어에서 메이저 정상까지 올라온 길은 국내 선수들에게도 큰 희망을 안긴다. 2009년 KLPGA 2부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미림은 그 해 시드 순위전 8위로 이듬해부터 1부 투어에 뛰어들었고, 2011년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14년 LPGA 마이어 클래식에서 미국 무대 첫 승을 따냈다. 이번 우승으로 대기만성의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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