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된 수소버스를 언제까지 보관만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북 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출고장엔 수소전기버스 6대가 고객에게 넘겨지지 못한 채 2년째 발이 묶여 있다. 이 버스들은 지난해 6월 광주시의 납품 요청을 받은 현대차가 제작한 22석 규모의 시내버스용이다. 당초 지난해 9월쯤 광주지역 시내버스 회사에 인도돼 도심을 누빌 예정이었지만 광주시의 수소충전 인프라 구축이 늦어지면서 차량 인수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 수소버스들은 재고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재고비용이 발생한다. 작년에 생산된 건 작년에 구매계약자가 가져가는 게 맞을 텐데"라고 푸념했다.
광주시가 수소버스 보급 확산에 앞장서겠다며 환경부에서 따온 수소버스 시범사업이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가 수소버스 충전소가 한 곳도 없는데도, 덜컥 수소버스 구매계약부터 밀어붙이는 바람에 출고된 차량을 놀리고 있어서다. 시내버스 업체들도 '일단 지르고 보자' 식의 탁상행정에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광주시는 2018년 11월 서울, 울산, 창원 등과 함께 수소버스 시범사업 6대 도시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환경부가 수소버스 본격 보급에 앞서 2019~2020년 이들 도시 시내버스 정규 노선에 수소버스 30대를 투입, 기술 타당성을 확보하고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미리 해결하기 위해 추진했다. 당시 환경부는 1대에 6억2,000만원하는 수소버스 6대를 광주에 투입키로 했다. 그러면서 시내버스 업체가 국비와 시비 보조금(각각 1억9,500만원), 현대차 지원금 1억원을 합쳐서 1억3,000만원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시는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현대차에 수소버스 6대를 대창운수 등 5개 시내버스 업체에 납품해 달라고 요청했다. 차량 구매계약은 업체별로 체결됐고, 현대차는 주문받은 차량들을 석 달 뒤인 같은 해 9월 출고했다.
그러나 시내버스 업체들은 출고된 차량을 2년째 인수하지 못하고 있다. 수소버스 전용 충전소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차량을 넘겨받아도 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시가 설치ㆍ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3곳이지만, 이들 모두 수소'승용차' 충전소다. 업체들에게 수소버스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를 두고 "시가 설익고 무책임한 수소버스 행정으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도 시는 이런 사실을 숨긴 채 올해 하반기까지 수소시내버스 6대를 도입한다고 호기를 부렸다. 시가 작년에 쓰지 못한 사업비를 올해로 넘겨놓은 터라, 이 돈으로 출고장에 있는 차량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수소버스 충전시설 확보가 쉽지 않은 탓이다. 시가 연말까지 수소버스 충전 설비를 보강키로 한 광산구 동곡수소충전소의 경우 주요 설비가 외국산이어서 해외제작사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선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충전소 관계자는 "올해 안에 설비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확답하기 어렵고, 업그레이드를 해도 안정성 확보를 위해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구 장등동 시내버스 공영차고지에 설치를 추진 중인 수소버스 충전소도 빨라야 내년 10월쯤에나 수소버스 충전이 가능하다. 연말과 내년 3월 각각 준공 예정인 벽진수소충전소와 월출수소충전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시는 연말까지 수소버스를 인수하지 못하면 정부에서 지원받은 보조금 11억7,000만원을 반납해야 해 처지가 딱하게 됐다. 버스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차량 인수가 늦어질수록 차량 운행 연한(차령)이 9년인 버스를 영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햇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업체로선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출고된 지 1년된 중고차를 새차 값을 주고 사야하는 것도 마뜩잖다.
시 관계자는 "작년 말까지 수소버스 충전 시설이 구축될 줄 알고 수소버스를 구매하도록 했는데 차질이 빚어졌다"며 "최대한 올해 말까지 충전 시설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