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ᆞ진보 가릴 것 없이 검찰 통제 욕구는 정치 권력의 본능이다. 권력의 그런 속성을 간파한 검찰은 자신에게 부여된 힘을 무기로 정치 권력과 늘 줄다리기를 해 왔다. 1년여 전 조국 사태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논란은 정치 권력과 검찰의 무변(無變)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 권력은 자신들의 통제권 밖 권력을 용납하지 않으며, 검찰은 법이 부여한 권한의 자의적 행사(불행사)에 능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정치 권력과 검찰이 그동안 상대에게 비수를 꽂을 때 내건 명분은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변명일 뿐이다.
1년 전의 검찰을 소환하면 추 장관은 곤욕을 치르고도 남았을 법하다. 100명 넘는 특수부 검사ᆞ수사관 투입, 무차별 압수수색, 또다른 ‘엄마 찬스’ 의혹 수사로 만신창이가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검찰은 그때와 달리 순하고 고분고분하다. 왜? 인사를 통해 추 장관과의 ‘튜닝’을 마쳤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검찰의 자의적 권력 남용을 명분 삼아 검찰 개혁과 ‘윤석열 라인’ 제거를 등치시키며 ‘추(秋) 라인’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권력에 당당하되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을 만들겠다는 개혁의 목적과 당위성은 또다른 검찰 통제를 정당화하는데 완벽하게 동원됐다.
그럼 검찰의 본질이 바뀌었을까. 외양은 1년 전과 180도 달라졌다. 추 장관의 서슬에 눌린 건지, 일단 폭풍은 피하자는 전략인지 알 수 없으나 권력을 향한 칼날은 확연히 무뎌졌다. 추 장관 말대로 정말 ‘간단한’ 수사에 8개월여를 허비하고도 군 휴가 특혜의 실체를 못 밝히다니, 웃음거리가 되고 비난을 받아도 될 일이다. 의혹이 증폭돼 정치적 논란이 거세진 뒤에야 움직이는 굼뜬 검찰 모습이 모든 걸 웅변한다. 검찰은 권력 입맛에 맞게 수사 속도와 결과를 제어하는 권력지향적 속성을 오롯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쯤에서 추 장관에게 묻고 싶어진다. 권력 눈치를 살피며 수사를 질질 끄는 검찰이 기대하던 ‘개혁된 검찰’의 모습인가. 아닐 것이다. 똑 부러진 수사로 똑 부러진 결과를 내놓는 검찰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추 장관은 최근 의혹에 대한 검찰 태도에서 권력에 순치된 검찰의 전형을 보고 있다. 취임 8개월 동안 4차례 인사를 감행하며 달성해 가려던 검찰 개혁이 그 취지나 목적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추 장관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애초 독립적이고 공정한 검찰 구현을 원하긴 했을까. 혹 검찰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건 아닐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침묵이 왜 이리 긴가. 추 장관 의혹 수사에 어떤 입장인가. 조국 전 장관에게 들이댔던 잣대대로라면 이번 사안도 엄중 수사가 마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가만 있는 이유는 뭔가. 측근 검사들이 없어서인가. 설령 그렇다 해도 검찰 수장으로서 지휘권은 살아 있지 않은가. 지금 날을 세워 봐야 득 될 게 없다고 보는 건가. 아니면 분위기가 더 무르익길 기다리는 건가. 윤 총장의 부작위는 조국 사태 당시 검찰 수사의 과도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지지부진한 수사를 용인할 수 있을까.
추 장관은 11일 전국 검사들에게 검찰 개혁의 완수를 당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아들 의혹 수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검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검찰 개혁 의지를 불태울까. 추 장관이 그토록 검찰 개혁을 갈망한다면 개혁의 동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현 상황부터 앞장서 정리하는게 먼저다.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속이 빤히 보이는 간접 입장 표명 정도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전면적인 수사를 윤 총장에게 지시하는 정공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