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됐습니다. 직장에서 미혼이라 속이고 유부녀인 직장동료를 만났습니다. 증거를 찾다 남편의 삶 자체가 거짓인 걸 알았습니다. 대학 성적, 외국어 능력부터 경제적 문제까지 모두 거짓이었어요. 남편은 취직 전 고시 공부를 오래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밤새도록 게임 하면서 돈을 탕진했습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100원씩 아끼면서 알뜰하게 살았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오래 만난 여성의 사진, 편지 등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4년 전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20대 초반, 남편은 20대 중반이었어요. 너무나 따뜻하게 저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정말 사랑했어요. 아이를 낳고 저는 휴학했던 해외 대학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고시생이었던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 육아를 도맡았습니다. 서로 떨어져 지냈지만 애틋했고, 방학 때면 남편과 아이 곁에 붙어 살았습니다. 남편에게 조금만 더 고생해서 원하는 시험에 합격해 당당한 가장이 되라고 늘 응원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든 것이 거짓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거짓말 한 이유를 묻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이 다 믿더라. 그때부턴 노력하지 않고 거짓말로 둘러댔다”고 합니다. 외도를 한 것도 “공부가 힘들었는데 직장의 그 여자는 항상 나를 대단하다 해줬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탄로난 남편은 극심한 분노조절장애를 보입니다. 휴대폰을 던져 부수거나, 화해를 위한 여행 때는 말다툼 끝에 아이 앞에서 제 멱살을 잡고 위협하며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저는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행복하게 컸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저를 위해 이사해서 양육도 맡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과 관계도 엉망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싶다’면서도 매주 만나는 사위를 어떻게든 다독이십니다. 부모님께 죄책감이 듭니다.
지난 1년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키우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남편도 외도를 반복하지 않고 솔직해지려 애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간 받은 상처와 고통을 얘기하면 “네 비난에 너무 지쳐 더는 너와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혼 뒤 4~5년 정도 지나 서로 성숙해지면 재결합하자고도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싶은데, 남편은 나와 아이를 버릴 생각만 하는 것 같아 불안과 분노가 치밉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명희(가명ㆍ27ㆍ대학원생)
명희씨,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당신의 깊은 상처와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배우자는 깊은 사랑을 전제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배우자 간의 사랑은 다른 이성과 나눌 수 없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는 상대에게 너무 깊은 상처와 아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줍니다.
명희씨 남편은 외도로 인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짓과 가식이 가득 찬 사람으로 밝혀졌어요. 부부간 일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지요. 사연만으로 섣부르게 남편을 판단할 순 없지만, 제가 봤을 때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이득과 편의대로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누구와도 깊고 진실된 관계를 맺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외도 상대와도 깊은 사랑보다는 순간의 쾌락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정말 깊이 사랑했다면, 명희씨에겐 상처가 되겠지만 ‘결혼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인간적 고뇌로 이해해볼 수는 있습니다. 남편이 그런 감정에 고뇌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배우자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고 그랬으면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고통스럽지만 이해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명희씨 남편은 그런 남자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속이고, 거짓말을 한데 대한 죄책감이 없습니다. 보편적인 사회적 기준을 어기고도 태연합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 충분히 알면서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입니다.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던 말도 아마 그 순간뿐이었을 거예요. 상황이 바뀌면 남편은 미안함을 잊을 거예요.
명희씨, 만나보지도 않고 남편을 이렇게 말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저의 조언이 명희씨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명희씨를 돕기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진심을 담아 전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 오랜 기간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상사가 10년 뒤 세상을 떠난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명복을 빌러 조문을 갈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이라면 다른 재미있는 일이 있거나 귀찮으면, 어차피 ‘이제 나하고 상관도 없는데 뭐’라고 하면서 조문을 안 갈 가능성이 크지요.
관계가 좋을 땐 잘하지만, 관계가 멀어지고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그와의 관계나 깊은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거지요. 남편은 중요한 대상과의 정서적 교감이나 감정적 경험이 유지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분들은 최대한 민낯을 드러내려하지 않지만, 일단 드러나면 서슴없이 민낯을 내보입니다. 명희씨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도가 발각돼 문제가 생겼지만 외도는 남편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 중의 하나이고, 외도를 용서한다고 두 분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명희씨는 이혼을 하는 게 나은 선택일 겁니다.
명희씨는 왜 이혼하기 힘들까요. 배우자에게서 받은 충격, 배신감 등을 제쳐놓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명희씨는 당신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남편에 대한 배려, 헌신, 희생도 스스로 결정해서 힘들더라도 견뎌왔어요. 주도적으로 삶을 잘 이끌었고, 대부분 당신의 방식으로 헤쳐나갔어요.
그런데 남편과의 관계는 당신이 원한 삶도, 방식도 아니었어요. 남편이 당신의 삶에 치명타를 입혔어요. 외도에 따른 배신감을 뛰어넘어 삶이 통째 흔들리는 고통이었을 거예요.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이 당신을 속이고, 다른 여성과 쾌락을 즐기려고 거짓말을 하고, 당신은 그 진흙탕 속에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같이 굴러들어간 게 돼버렸어요.
명희씨, 남편 문제는 당신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남편은 당신뿐 아니라 부모와 아들 등 주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허구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남편과의 관계를 끝내는 방식도 당신이 살아온 방식과 다르지요. 남편이 처절하게 용서를 구해 당신이 용서해주든지, 혹은 당신이 이혼하자고 해야 하는데, 적반하장 식으로 남편은 명희씨를 탓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있어요.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아온 당신에게 이런 남편과의 관계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그걸 인정하면 당신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이니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오겠지요. 거짓과 위선이란 걸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부여잡아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은 것이겠지요.
남편과 이혼을 고민하는 이유가 그를 사랑해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노력한 삶을 남편이 깨트리고 오염시켰다는 걸 당신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운 겁니다.
물론 남편이 당신을 사랑한 것마저 거짓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신을 사랑한 그 순간 순간은 다 진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래 지속하기보다는 자기 편의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앞으로 남편이 달라지더라도 그건 그 순간에 불과할 겁니다. 당신이 노력하는 걸로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겁니다. 이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관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롯이 남편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문제로 보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으면 계속 후회하게 될 지 모릅니다.
고통스럽겠지만 지금이라도 남편을 잘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이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남편이 외도를 했다고 해서 훼손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훌륭하게 잘 살아온 겁니다. 앞으로 남은 당신의 삶 또한 그런 남편에게 휘둘릴 정도록 가치 없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의 기준에 맞추지 마세요. 이혼 뒤 성숙해지면 재결합하자는 남편의 말은, 지금 상황을 일단 모면하고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도록 하세요.
아이를 위해서는 아빠와 엄마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아이 때문에 연락도 하고 얼굴도 보겠지만, 아이의 부모로서 관계를 맺는 것과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앞으로도 당신이 살아온 대로 주도적이고,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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