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정적' 나발니 독극물 중독사건

입력
2020.09.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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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나발니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다. 톰스크에서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18일 만이다. 그간에 나발니는 치료차 독일로 이송되었고 그가 화학무기의 일종인 노비촉이라는 신경안정제에 중독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제 나발니 사건은 러시아 국내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와 독일, 러시아와 서구 간의 국제적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독일은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힐 것을 러시아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러시아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나빌니는 누구인가부터 알 필요가 있다. 나발니는 현재 러시아 야권의 대표 주자로 간주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야당 지도자는 아니다. 그가 이끄는 진보당은 러시아 국가두마, 즉 의회에서 1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1야당인 공산당 당수 주가노프나 제2야당 자유민주당의 지리놉스키를 제치고 야권의 대표 주자로 간주되는 것은, 그만이 푸틴 정권에 대해 제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였던 나발니가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였다. 그가 자신의 라이브저널 블로그를 통해 러시아 국가의 부패 현황을 폭로하고 푸틴 정권을 비판했다.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이후 반부패운동을 계속하면서 파워 인플루언서로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한편 그의 인기와 영향력은 제도권 정치에서도 확인되었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나발니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27%의 표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통해 온라인상의 영향력을 오프라인 선거에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발니는 이후 선거 등 각종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SNS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2018년 대선 시 선거 거부 운동 및 푸틴 취임 항의 시위, 2019년 총선 시 공정 선거 요구 시위, 2020년 헌법 개정 투표 보이콧 운동 등을 주도했다.

그에게는 흔히 '푸틴의 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가 이를테면 대선에 출마하여 푸틴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고도로 체계화된 세력을 구축한 푸틴의 대항마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푸틴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지난 헌법 개정 투표에서도 나타났듯이, 푸틴은 여전히 놀라운 수준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나발니가 푸틴을 이길 수는 없어도, 푸틴을 몹시 성가시게 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 특히 푸틴 측근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반부패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나발니에 의해 부패를 폭로당한 인사 중에는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도 포함된다. 그가 올 초 총리직에서 사퇴한 것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발니의 폭로는 종종 시민들의 항의 시위를 동반하곤 했다. 시위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시위 주동자를 구금하는 등 정부의 탄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나발니는 러시아 지방 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함으로써 푸틴의 지방 장악력에 균열을 가져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2019년 지방 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 후보 여러 명을 패배하게 만들었다. 하바롭스크주도 이러한 곳 중 하나였다. 자유민주당 후보로 주지사에 당선된 S. 푸르갈은 푸틴에 의해 주지사에서 해임되었는데, 현재 하바롭스크에서는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다가오는 9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발니는 또다시 통합러시아당 후보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니, 그가 톰스크에서 돌아오는 길에 독극물 중독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감히 푸틴 정권에 도전했기에 나발니는 그간 여러 차례 체포와 구금, 재판 등 정부의 탄압을 받아 왔었다. 소소한 행정적, 재정적 압박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노비초크 중독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의 이름이 안나 폴릿콥스카야, 보리스 넴초프 등 암살당한 러시아 지도자들 이름 옆에 나란히 쓰일 뻔했다.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던 소수의 용감한 러시아인들이 가졌던 기상을 그가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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